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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위기의 골목상권 코로나 탓? …젠트리피케이션 해결해야

비싼 임대료 '이미 죽은' 상권 '깨진 독 물 붓기' 우려···근본 대책 시급

김화평 기자 | khp@newsprime.co.kr | 2020.05.12 18:22:56
[프라임경제]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한 골목상권 내 소상공인들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골목상권의 숨통을 옥죄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일회성·선심성 지원이라는 지적을 피해가기 힘들어 보인다.

행정안전부(장관 진영)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골목경제가 유지되고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 실시 계획을 밝히고, 5월8일까지 제출된 사업계획서 중 이달 안에 10개 골목상권을 선정해 각각 8억원씩 총 8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과연 이 사업으로 골목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골목경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존재했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근본 원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중산지주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 계층이 유입돼 기존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용어는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해 인구 유입을 유도하고 경제활동을 촉진해 도시를 활성화 하는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나 도시가 활성화되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상승해 기존 주민들이 내밀리고 인구 구성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가·소상공인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골목에 들어와 활기를 띄게 만들면,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를 요구해 이들을 쫓아내고 유사한 업종을 차리거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가들이 기존 상가들을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됐다.

한때 소위 '핫플레이스'였던 이대·삼청동·경리단길 등은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1년 가까이 공실로 남아 있는 곳도 많다. 건물주들이 장기간 공실로 두는 이유는 임대료를 낮춰 건물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보다 공실로 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이 있는 곳에서 자영업자가 수익을 내기란 매우 어렵다. 영세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그 자리에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면서 골목 특성이 사라지거나 상권 자체가 죽어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이대 인근 상인 A씨는 "요즘 이대 학생들조차 다른 동네 가서 노는데, 여기서 자영업자가 월세 500만~1000만원이나 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경기침체 및 위축된 소비심리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고, 골목경제 상권을 살리겠다는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의 취지는 훌륭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결코 골목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

지난 2019년 8월 우양호 한국해양대학교 부교수가 발표한 논문 '마을공동체의 진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극복'에 따르면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재생의 부작용도 겪었지만, 현재 마을공동체 진화를 통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이들은 제도나 정책적 처방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안에서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우 부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극복을 위한 가장 이상적 방식은 외부 힘을 빌리지 않고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며, 마을자율공동체 구축과 운영원칙 설정 및 활동의 고도화가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공동체를 통한 원주민 소득 증대 △마을 공동수익 구조 및 일자리 창출 △관광지화로 생긴 경제적 편익 공동배분 △외지인 및 상인들과 원주민 화합을 위한 활동과 노력 △외부 관청의 역할 변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근 골목 사정을 들여다보면 상인보다 건물주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고, 상인들 사이에서도 상가번영회 등 단체가 미가입 점포를 핍박한다거나 단체 안에서 이권 다툼을 벌이는 일들도 발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우리는 고통을 함께 나눠야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혜를 배우는 중이다. 고질적인 골목상권 붕괴 문제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책 변화를 도모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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