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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맑고 깔끔한 스프, 하코다테 '시오라멘' 

"라멘은 국민식…라멘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04.10 09:36:58

[프라임경제] 홋카이도 3대 도시 삿포로·아사히카와·하코다테(函館). 모두 일본 라멘의 중요한 장르를 차지하는 지역들이다. 

삿포로는 미소라멘의 발상지며 아사히카와는 해산물을 이용한 톤코츠 쇼유라멘이 유명하다. 반면 하코다테는 일본을 대표하는 시오라멘의 고장이다. 어디를 가도 메뉴판 맨 위에 시오라멘이 있고 주문할 때 종류를 말하지 않으면 으레 이 라멘이 나온다.

지요켄의 시오라멘. ⓒ hakoburu.jp

시오라멘은 스프가 맑고 맛이 깔끔하다. 타레 외 다른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아 스프 본연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 전문으로 내놓는 집이 많지 않다. 

라멘은 일본의 개항과 함께 집단으로 이주한 화교들이 개발한 음식이다. 세월이 흐르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로 진화했지만, 시오라멘은 초기 모습을 지키고 있다. 

라멘의 스프는 타레에 다시를 혼합해 만든다. 시오스프는 보통 닭 뼈·어패류·야채를 우려낸 다시를 사용하지만 하코다테에서는 돼지 뼈만으로 다시를 만든다. 모든 다시에 들어가는 다시마도 넣지 않는다. 

재료를 끓일 때 뼈에서 젤라틴이 용해돼 나오지 않도록 약한 불로 오랫동안 가열하기 때문이다. 젤라틴이 섞이면 유백색 톤코츠 다시가 된다. 이렇게 얻어지는 다시는 닭 뼈를 우려낸 것보다 투명도가 높고 비린내도 거의 안 난다.

하코다테에 라멘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32년이다. 다시마 등 수산물을 매집하기 위해 방문하는 화교를 대상으로 킷사텐에서 라멘을 판매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시나소바'라고 불렸던 라멘은 광동성에서 유행하는 탕면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에서는 이와 별도로 1884년 지역신문에 난킨(南京)소바 광고를 낸 요와켄(養和軒)이 효시라는 주장을 한다. 

그렇지만 레시피나 관련자의 증언 등 구체적 물증이 없어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새로운 단서라도 발견한다면 1910년 토쿄에서 시작됐다는 라멘의 역사는 새로 써야 할지 모른다.

하코다테 라멘에 사용하는 면은 JIS(일본공업규격) 22~24호로 아사히카와 같은 사이즈고 삿포로보다는 약간 가늘다. 면의 형태는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직선 면이다. 면 위에 올리는 고명이 심플한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보통 고명은 챠슈·멘마(죽순)·파 세 가지로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간결함은 스프와 일체감을 극대화 시킨다. 하코다테 라멘은 다른 라멘에 비해 화려함이 덜 하지만 의외로 골수팬이 많다. 소위 라멘 맛을 아는 사람들끼리 속닥하게 즐긴다는 경우가 많다.

하코다테시가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점포를 소개한다. 역 앞 포장마차촌 다이몬(大門) 거리에 위치한 지요켄(滋養軒). 건물이 작고 허름해 지나치기 쉽지만 이름 난 '시니세(노포)'다. 1947년 개업 후 하코다테 시오라멘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면은 점포 2층에서 뽑아내는 자가제를 사용하고 사이드 메뉴로 교자(군만두)를 파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는 평가가 자자하다. 라멘 ¥500, 교자¥350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하코다테시 소개

홋카이도 오시마(渡島) 반도 남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 혼슈(本州)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허브다. 삿포로, 아사히카와에 이은 홋카이도 제3의 도시로 인구는 지난 2월 기준 26만명이 약간 넘는다.

하코다테는 근대사의 변곡점이 되는 주요사건의 무대였다. 1859년 미국의 통상요구로 요코하마·나가사키 등과 함께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곳이 하코다테였다.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선 1868년에는 막부의 잔존세력이 항전의 근거지로 삼아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다. 7개월에 걸친 내전이 수습되자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된다.

하코다테는 외국인보다 자국민에게 인기가 있는 관광지다. 청량한 기후와 함께 근대 일본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이국정취도 물씬 풍긴다. 그 중에서도 1층을 일본식, 2층을 서양식으로 지은 '와요(和洋, 일본과 서양)절충식' 건물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이러한 건물은 당시 빈번하게 발생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한다. 미슐랭 여행가이드 일본편에는 별 1개 이상을 획득한 관광지 20여곳이 올라와 있다.

하코다테가 일본 원양어업의 본산으로 각광을 받는 시기가 있었다. 1905년 일본이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을 맺고 연해주 어업권을 획득하면서다. 연해주 해역은 옛날부터 연어·송어·청어·대게 등 고급어종이 서식하는 황금어장이다.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웠고 개항지 메리트가 있던 하코다테가 전진기지가 된 것은 당연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거침없는 성장이 이어졌다. 수백년 된 도시를 단숨에 제치고 인구 순위 9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며 어로가 크게 위축되고 패전 후에는 원양어업 자체가 중단되기도 한다. 

이 기간 연근해 오징어 어획과 수산물가공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지만 비대해진 도시 규모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현재 하코다테는 인구감소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2014년에는 중앙정부로부터 '인구감소가 크게 우려되는 지역'으로 지정됐다. 

최근 홋카이도 신칸센이 개통하며 관광분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전 해저터널 개통되기 전에는 하코다테역과 혼슈(本州)의 아오모리 역을 연결하던 연락선을 통해 연간 300만명 내외 유동인구가 하코다테를 거쳐 갔다.

하코다테는 한국 고양시와 자매도시 제휴계약을 맺고 있다. 2016년 4월에는 쿠도·토시키(工藤寿樹) 시장이 직원과 시의원 18명을 인솔해 고양시 꽃박람회에 참가했다.

하코다테라는 지명은 1400년대 무로마치(室町)시대 지은 관공서 건물(館)이 상자(箱)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 후 메이지 정부가 홋카이도를 명명할 때 하코의 상(箱)을 함(函)으로 바꿨다. 상자보다는 함의 이미지가 좀 더 고상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두 글자는 발음이 같다.

◆주요명소

△카네모리(金森) 적벽돌 창고

막부 말기 조선소와 외국인 거주지가 있던 매립지. 12월 크리스마스 판타지 이벤트가 유명하며 연간 내외국인 200만명 방문한다. 주변에 시립박물관 향토관·북방자료관이 있다.

△구(舊)하코다테구 공회당 

1910년 메이지시대 건설된 서양풍 2층 목조건물로 하코다테산 산록에 위치한 국가중요문화재다.

본관 1762㎡(533평)과 부속 동으로 구성됐으며 황태자가 방문할 경우 숙소로 사용됐다. 1982년 복원된 곳이다.

△하코다테 하리스토스(크리스트)정교회

중요문화재로 일본 크리스트정교회 소속 부활성당이다. '하리스토스'는 크리스트의 그리스어 표기며 비잔틴 양식이다. 1907년 소실됐다가 1916년 복원됐으며 1929년 재건축을 마쳤다.

△고류(五稜)성곽

1866년 에도막부가 축성한 성곽이다. 이탈리아의 별모양 축성술 도입했으며하코다테 전쟁 시 반정부군(막부)본거지였다. 2010년 성곽 내 청사가 복원됐으며 인근에 전망타워 두 곳이 있다.

△유노가와(湯の川)온천

홋카이도 3대 온천의 하나다. 바닷가 온천이며 하코다테 공항 근처에 있다. 시내에서 교통 편리하며 온천정류소 근처에 족탕 온천 있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흑송이 유명하다.

△하코다테(函館)산

시 서쪽 끝 연륙도에 있으며 334m 최고봉과 200m급 10여개 봉우리로 이뤄졌다. 2차 대전 당시 요새지역이었으며 정상 전망대까지 로프웨이를 운행한다 .야간 시내 야경이 일본 3대 야경지의 하나로 꼽힌다.

△에산(恵山) 도립자연공원

해발 618m의 높지 않은 표고이면서 많은 고산식물 서식한다. 화산분출물과 증기공을 관찰할 수 있으며 '미즈나시(水無)' 바다 노천온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간조 시만 이용 가능).

장범석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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