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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133] '자막에 담은 소리'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장벽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 제작…사회취약계층 질적 발전 기여

김수경 기자 | ksk@newsprime.co.kr | 2016.03.09 16:33:17
[프라임경제] '배리어프리'라는 건축용어가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인들도 편하게 건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지을 때 '물리적 장벽'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영화 장벽은 무엇일까? 바로 사운드와 비주얼이다. 흔히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 말하지만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이들에겐 그것조차 사치인 셈이다. 

최근 이러한 영화 장벽을 없애고 장애인들과 노인,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곳이 있다. 바로 사회적기업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대표 이은경)이다.

◆장애 상관없이 영화로 소통하는 세상 꿈꿔

"배리어프리영화는 기존 영화에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 해설과 대사 및 모든 소리 정보를 표현한 한글자막을 넣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장벽을 없앤 거죠."

이날 만난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사무국장은 부천 영화제, 서울 단편 영화제,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일한 베테랑 영화인 출신. 그가 배리어프리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0년 '일본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다. 이날 본 다양한 배리어프리영화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영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아인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간간이 자막을 넣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당시 배리어프리영화는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들이 함께 참여한 것이 아니기에 영화에 담긴 감정, 그 안의 숨겨진 해석 등을 잘 담아내지 못한 게 아쉬웠죠. 그저 자막을 넣은 영화에 불과했어요."

이러한 영화 대신 진짜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원했던 김 사무국장과 이수정 대표는 상의 끝에 '같이 해내자'라는 마음가짐을 안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설립하게 됐다. 이후 2011년 우리나라 최초로 배리어프리영화 포럼을 개최했다.

◆장애인·노인·어린이 사회취약계층 아우르는 영화 제작

"배리어프리영화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창작자인 감독이 참여해 그가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를 제대로 제시해주고 전문배우와 성우의 풍부한 감정표현이 담긴 더빙,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전문적인 대본이 있어야 가능하죠."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 배리어프리버전.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한국 영화의 경우 캐스팅, 화면해설 녹음, 사운드 믹싱, 자막 삽입 등의 과정을 거쳐 한 달 정도 걸리지만 한국어 더빙 같은 부가적인 일이 더 추가돼 두 달쯤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장애인용 영화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아요. 외화를 더빙하니 자막을 읽기 어려운 노인과 아이들도 더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죠.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들도 좋아하고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만든 영화는 주로 기관이나 복지관에서 정부 지원 행사에 쓰인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정기상영도 하는데, 하루 평균 150명이 방문한다. 

그러나 방문객 모두가 장애인은 아니다. 오히려 노안으로 자막을 읽기 어려운 노인이나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이, 이주민들이 많이 오는 추세다.

김 사무국장은 처음 2010년 일본 사가 배리어프리 영화제에 참가했을 당시 장애인과 어린이, 노인들이 모여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영화의 미래를 발견했다고 앞선 상황을 떠올렸였다. 한 영화관 안에서 인간 존중과 공동체 의식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영화 2편에서 38편으로 확대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

"처음 포럼을 개최할 때만 해도 2편의 작품만 상영했었는데 지난해에는 38편 상영이 가능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줬기 때문이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는 매년 11월 영화제를 개최한다. 본래 '배리어프리영화제'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배리어프리영화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여는 만큼 2013년부터 앞에 '서울'을 붙여 차별화를 뒀다.

영화제 포스터도 영화제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디자이너들 덕분에 완성됐다. 특히 지난해 포스터는 서울 배리어프리 영화제(Seoul Barrier Free Film Festival)의 약어 'SeBaFF'를 형상화해 풀어낸 점이 특징이다. 

2015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 홍보대사.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지난해 영화제부터 올해 영화제까지 활동하게 될 홍보대사는 배우 배수빈과 김정은입니다. 이 배우들은 행사에 참석하거나 더빙, 화면 해설 등을 한 번씩 해서 배리어프리영화를 홍보할 예정이에요."

2번의 포럼과 3번의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톱 연예인들이 홍보대사나 화면 해설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지민·김성균·성유리·한효주 등 유명배우들부터 이준익·양익준·김태용 등의 영화감독들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함께 한 것.

일반인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시각장애인, 학생 홍보대행사 등 많은 이들이 배리어프리영화에 뜻을 두고 열띤 홍보를 도맡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난해 영화제에는 사흘간 2562명의 방문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환경 조성과 인식 개선이 가장 큰 고민"

"고민이 많아요. 배리어프리영화가 널리 확산되려면 환경과 인식 개선 필요할 뿐더러 그에 맞는 고가 기기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3년 안엔 이런 것들이 다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배리어프리영화 상영 환경은 오픈 방식과 폐쇄 방식 둘로 나뉜다. 오픈 방식은 영화에 화면해설과 자막이 영화에 다 들어가기에 관객들에게 선택권이 없다. 반면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해야만 화면해설과 자막이 생기는 폐쇄 방식은 능동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오픈 방식의 영화 상영는 매우 간단하지만 대다수 관객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상영될 가능성이 낮다. 결국 장애인이 모든 상영관에서 회차 상관없이 영화를 보려면 구글 글라스. 스마트 글라스 같은 웨어러블기기가 필요한 실정이다.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사무국장이 2015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수경 기자

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 인식이 좋지 않은 더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더빙된 외화는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아 아동 애니메이션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가끔 연휴 특선으로 방영되는 더빙 영화의 영향이 큽니다. 한 번 방영되니까 피디들은 영화에 대한 해석 없는 빠른 더빙을 선호하죠. 그건 영화 퀄리티를 떨어뜨릴뿐더러 점차 더빙영화를 외면하게 만드는 지름길인데도요."

하지만 배리어프리영화의 더빙은 다르다. 많은 이들에게 영화의 생생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상의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올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만들 영화는 흥행작 위주로 30여편 정도다. 이외에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자체에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다루지 않는 영화나 외화 위주로 약 5편의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또 더 많은 사회취약계층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홍보 캠페인에도 힘을 싣는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 디자이너나 시각장애 음악가들과의 콜라보 등을 통한 홍보 말이다.
 
김 사무국장은 인터뷰를 말미에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 일본에서 한 해 개봉되는 영화 400편 중 극장에서 완전한 형태로 상영되는 것에 비해 한국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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