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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인물 ⑥] 군산 출사표 낸 美 문화원 사건 주역 함운경씨

메니페스토協 뽑은 우수공약 아이디어맨…기업 경영 등 '생활인' 면모 이색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5.11.19 19:40:47

[프라임경제] 일단의 대학생들이 미국 문화원에 난입, 점거하고 광주 항쟁 관련 미국의 의견 천명을 요구한 미국 문화원 72시간 점거 사건(이하 미 문화원 사건)은 1985년 봄 정국을 얼어붙게 했다. 미국 측이 '선 농성 해제, 후 대화'를 고수해 학생 측이 바란 '공식문서화'와 '학살동조 책임인정 및 공개사과'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고 결국 자진 해산 형식으로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불어닥친 공안 바람은 건국대 사태(1986년) 등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구속자를 냈다.

당시 사건 주동자급으로 이후 어떤 형식으로든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던 김민석(당시 서울대)·허인회(고려대)·고진화(성균관대) 등과 동렬선상에서 거론되는 또 다른 주연이 바로 함운경 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이다.

군산제일고를 졸업,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그는 학생 운동에 깊이 관여, 이 사건 이후 긴 유랑의 길을 걷게 된다. 군산미래연구소에서 소장으로 많은 현안을 고민하는 등 그 와중에도 고향에 대한 애정을 거둔 적은 없다.

오랜 세월 야인 생활을 하던 함 전 부의장이 선량으로 출사표를 쓴 것은 이미 여러 번. 1996년 보궐선거에 서울 관악갑 지역구에 뜻을 두고 무소속으로 나섰다. 2000년 16대 총선에는 고향에 내려와 출마했다. 연거푸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2006년에는 지방선거로 방향을 전환, 군산시장직에 도전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청년몫으로 배당된 중앙위원을 지냈고, 열린 정책연구원 교육연구센터 소장으로 일했다.

약간의 견강부회 해석을 하자면 2006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그가 군산시장 도전 공약으로 걸었던 'E-응급구호 시스템'이 당시 매니페스토운동 전북추진본부가 뽑은 좋은 공약 중에 당당히 오른 것은 이론적으로 탄탄한 연구와 당원 정책 관련 어젠다 세팅 경력이 발휘된 사례라 풀이할 수 있다.

당시 매니페스토운동 전북추진본부는 203개 공약 중 8개만 실현 가능성도 있고 좋은 공약으로 추려내는 극히 짠 성적표를 매겼었다.  

2012년 출판기념회 당시의 함운경씨. ⓒ 함운경 후원회 카페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도 함 전 부의장은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을 역임해 아직도 그를 친노(親盧·친노무현)로 분류하거나, 적어도 열린우리당 색채에 가장 적합했던 소장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여러 번의 선거를 치르고 공천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도 적잖이 받았다. 이런 상황이 결국 최근 함 전 부의장이 야권 신당파인 장세환 전 의원이 주도하는 '전북 희망연대'에 참여하는 행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희망연대행은 지역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적어도 20대 총선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덕을 보며 출마할 방안을 찾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셈이기 때문이다. 무소속 내지 신당 간판으로의 출마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대목이다. 장 전 의원의 경우 천정배 의원의 '개혁적 국민정당'에 승선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18일 출범식에 나타나지 않아 합류 가능성이나 일정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다만, 함 전 부의장이 여러 반(反)새누리당 성향 신당 추진 기류 속에서 몸을 새롭게 의탁하거나 통합 과정에서 능동적 메신저로 부각될 가능성 등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친노 색채가 있다는 점, 원칙론자라는 성향 등에서 천 의원과 마음이 맞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다.

과거 천 의원은 현역의원 중 처음으로 노무현 당시 경선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현역 지지 1호' 원조 친노 인사였다.    

함 전 부의장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꼿꼿하게 대항하던 성정에 원칙주의자지만 날선 비판과 비난을 퍼붓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에 해당된다. 더욱이 운동권 출신 인사들 중 일부는 생활인으로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남에게 신세지는 것과 달리 그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점은 미덕인 동시에 스스로를 들볶는 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2012년 정초, 19대 총선 예비후보로서 연 출판기념회에 일명 '나꼼수' 팀이 출연해 지원사격을 해 준 것을 기억하는 군산 지역민들이 많다. 날선 발언으로 정치적 이슈 선점을 노릴 법한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조국 서울대 교수 등과 자신을 연결짓는 시도 등에 대단히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동가형 정치인으로서의 역할보다 공약과 정책에 마음이 더 가는 스타일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군사정부에 맞서 서울대 삼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운영하던 시설물을 점거하는 등 강경하게 맞섰다는 과거의 이력을 낯설어 하는 이도 있다.

함운경씨는 정치인이기 전에 생활인이다. 스스로 조경회사 등을 키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운동기구 등도 만드는 등 활발히 아이디어를 분출하고 있다. ⓒ 함운경씨 페이스북

정치권에서 떠돌면서 입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은 '목공'. 스마텍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에 적을 두고 일을 하고, 주말엔 장인 소유 농장일을 거들면서 나무를 다듬고 뭔가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이를 직업으로 연결, 나무같은 삶을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조경회사(적송)를 운영하게 된다. 개안의 시기를 맞이하며 정치 2막을 연 것이다.

그의 부인은 의사다. 살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을 정도의 벌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함 전 부의장은 서민, 중산층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치를 경계하는 차원에서도 생활인으로서의 행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특히 조경 관련 회사지만, 어린이 안전 등에도 관심이 많아 운동기구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관련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함 전 부의장이 경영인으로서 어린이 등에게 기울이는 관심이 향후 여의도에서도 구현될 수 있을지, 군산 지역민들의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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