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혼다코리아가 차세대 레트로 스포츠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CB1000F'를 국내에 출시했다. 1980년대 혼다를 대표했던 CB 시리즈의 디자인을 되살린 신차다. 그리고 이번 출시에는 헤리티지 이상의 역할이 담겼다.
혼다코리아는 올해 말 국내 자동차 판매를 종료한다. 기존 고객을 위한 애프터서비스와 부품 공급, 보증 대응은 유지하지만 신규 판매 사업은 모터사이클에 집중한다. CB1000F는 혼다코리아의 국내 사업에서 모터사이클이 사실상 유일한 성장 축으로 남는 시점에 투입된 리터(ℓ)급 신차다.
혼다코리아는 지난 2001년 모터사이클로 국내에 진출한 뒤 2004년 자동차 판매를 시작했다. 올해 3월까지 누적판매량도 모터사이클 약 42만600대, 자동차 약 10만8600대로 차이가 크다. 모터사이클은 처음부터 혼다코리아의 핵심 사업이었다.
시장 입지도 확고하다. 혼다코리아는 2025 회계연도인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에서 모터사이클 약 4만3000대를 판매했다. 국내 이륜차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규모다.
자동차 판매 종료 이후의 과제는 모터사이클 사업으로 방향을 돌리는 데 있지 않다. 이미 확보한 시장 1위의 기반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PCX와 슈퍼커브 등 생활형 모델에서 쌓은 대중성을 취미와 레저를 위한 대형 모터사이클 구매로 연결해야 한다.

차세대 레트로 스포츠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CB1000F'. ⓒ 혼다코리아
CB1000F가 맡은 역할도 여기에 있다. 생활형과 중형 제품군에 강점을 가진 혼다가 리터급 레트로 네이키드 시장에서 고객층을 늘리고, 대형 모터사이클 브랜드로서 존재감도 강화하기 위해 꺼낸 모델이다.
리터급 시장은 생활형 이륜차와 구매 기준부터 다르다. 이동 편의성과 경제성뿐 아니라 디자인과 엔진 특성, 브랜드 역사, 소유 만족감이 선택을 좌우한다. 혼다가 CB1000F에 과거의 CB를 불러온 것도 이런 취미 수요를 겨냥해서다.
CB1000F는 1980년대 북미 AMA 챔피언십에서 활약한 CB750F와 CB900F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 원형 LED 헤드라이트와 크롬 도금 배기 파이프, 메가폰 형태의 머플러를 적용해 당시 CB 시리즈의 인상을 살렸다. 연료탱크부터 리어 카울까지 이어지는 차체 라인과 스트라이프 그래픽도 과거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헤리티지는 생활형 모델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혼다의 역사와 감성을 전달한다. 과거 CB 시리즈를 기억하는 중장년 라이더에게는 친숙함을 주고, 젊은 고객에게는 최신 기술을 갖춘 레트로 모터사이클로 접근한다. 서로 다른 세대의 취미 수요를 하나의 모델로 묶으려는 구성이다.
복고적인 외형 안에는 최신 스포츠 네이키드 모델인 CB1000 호넷(Hornet)의 기반을 활용했다. 동력계는 1000㏄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124마력(9000rpm), 최대토크 10.5㎏·m(8000rpm)을 발휘한다.

CB1000F는 1970년대 후반 전 세계 모터사이클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연 CB750F와 CB900F에서 영감을 받은 레트로 스타일링을 채용했다. ⓒ 혼다코리아
CB1000F는 최고출력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저·중회전 영역의 토크와 응답성에 초점을 맞췄다. 도심과 근교 주행, 주말 투어까지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엔진 특성을 조율했다. 같은 기반을 사용하는 호넷이 공격적인 스타일과 스포츠 성능을 강조한다면 CB1000F는 클래식 디자인과 편안한 주행 감각으로 고객을 나눠 받는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성격이 다른 두 모델을 운영하면 개발 효율을 높이면서 리터급 네이키드 시장의 선택지도 넓힐 수 있다. 성능을 앞세운 호넷과 헤리티지를 강조한 CB1000F를 함께 배치해 취향이 다른 라이더를 혼다 안에 붙잡는 전략이다.
795㎜로 낮춘 시트고도 판매 저변을 고려한 선택이다. 대형 모터사이클에서 부담으로 작용하는 발 착지성을 개선해 기존 리터급 라이더뿐 아니라 배기량을 높이려는 고객의 접근도 유도한다. 차체 양옆을 좁게 다듬어 정차할 때의 안정감도 높였다.
전자제어 장비는 최신 리터급 모델의 기준을 따랐다. 6축 관성측정장치(Inertial Measurement Unit, IMU)를 기반으로 코너링 ABS를 제어하고, 스로틀 바이 와이어(Throttle By Wire, TBW)와 혼다 셀렉터블 토크 컨트롤(Honda Selectable Torque Control, HSTC), 윌리 컨트롤을 적용했다.
라이딩 모드는 △스탠다드 △스포츠 △레인 △유저1 △유저2 총 5가지다. 쇼와 SFF-BP 도립식 프런트 포크와 닛신 브레이크 시스템,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도 갖췄다. 5인치 풀 컬러 TFT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키를 더해 클래식 디자인 때문에 최신 안전·편의 장비를 포기하지 않도록 했다.

혼다 CB1000F는 리터급 고성능을 자랑하면서도 차체는 누구나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도록 뛰어난 조작성과 안정적인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췄다. ⓒ 혼다코리아
국내 판매가격은 1598만원(부가세 포함)이다. 실버와 블랙 두 가지 색상으로 판매하며, 탱크백과 사이드백, 윈드스크린, 엔진 슬라이더 등 13종의 순정 액세서리도 운영한다. 도심 주행부터 장거리 투어와 커스터마이징까지 사용 범위를 넓힌 구성이다.
가격과 제품 성격을 종합하면 CB1000F는 소수 마니아를 위한 상징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헤리티지로 관심을 끌고, 일상적인 엔진 특성과 낮은 시트고, 최신 전자제어 장비를 통해 실제 구매층을 넓히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혼다코리아가 기대하는 성과도 한 모델의 판매량으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생활형 모델을 통해 혼다를 경험한 고객이 배기량을 높일 때 다른 브랜드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제품 흐름을 완성해야 한다. CB1000F는 혼다의 판매 구조를 대형 취미 시장까지 연결하는 중간 다리다.
자동차 판매가 끝나면 혼다코리아의 신규 판매 실적과 브랜드 접점은 모터사이클에 더욱 의존한다. 국내 이륜차 시장 1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 생활형 시장에서 확보한 규모를 대형 취미용 시장의 매출과 브랜드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
CB1000F는 그 가능성을 확인할 첫 모델 가운데 하나다. 리터급 고객을 새로 끌어들이고 대형 모터사이클에서도 혼다의 존재감을 키운다면 모터사이클 중심 사업의 기반은 한층 단단해진다. 반대로 생활형 모델에 편중된 강점을 넓히지 못하면 자동차 판매 종료 이후 혼다코리아의 성장 공간도 빠르게 좁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