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네시스의 첫 르망 24시간(24 Heures du Mans) 출전은 레이스 참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로 꼽히는 르망 24시간 하이퍼카 클래스에 오르는 것은 제네시스가 럭셔리 브랜드로 쌓아 온 이미지를 고성능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검증받는 첫 관문이다.
제네시스는 그동안 디자인, 정숙성, 승차감, 고객 경험을 앞세워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왔다. 그러나 유럽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브랜드의 깊이는 성능과 모터스포츠 경험까지 함께 요구된다. 제네시스가 마그마를 앞세워 르망에 나서는 이유다.

스페셜 리버리가 적용된 GMR-001 #17(사진 왼쪽) #19(사진 오른쪽). ⓒ 제네시스 브랜드
제네시스는 프랑스 르망 라 사르트 서킷에서 13~14일(현지시간) 열리는 대회에 전담 모터스포츠 팀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을 출전시킨다. GMR-001 하이퍼카를 앞세운 이번 참가는 제네시스가 WEC 데뷔 시즌에 곧바로 최상위 내구 레이스의 중심 무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자동차 브랜드가 글로벌 모터스포츠의 기술 경쟁 구도 안으로 들어섰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작지 않다.
르망 24시간은 국제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FIA)이 주관하는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World Endurance Championship, WEC)의 핵심 라운드다. 1923년 시작돼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이 대회는 24시간 동안 약 14㎞ 길이의 트랙을 반복 주행해 가장 긴 거리를 달린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순간적인 최고속도보다 차량 내구성, 연료·타이어 관리, 드라이버 체력, 피트 운영, 변수 대응 능력이 함께 요구된다.
르망은 빠른 차만으로 결과를 만들 수 없는 레이스다. 차량은 24시간 고속주행을 견뎌야 하고, 팀은 밤낮 없이 전략을 조정해야 하며, 드라이버는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첫 출전에 나서는 제네시스가 완주를 최우선 목표로 잡은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면서 고성능 브랜드로 향하는 첫 검증 과제다.

스페셜 리버리가 적용된 GMR-001 #17. ⓒ 제네시스 브랜드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극한의 환경 속에서 퍼포먼스를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스를 통해 얻은 경험을 마그마 퍼포먼스 차량 개발과 사업 운영 전반에 반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제네시스가 모터스포츠를 홍보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향후 제품 개발과 고객 경험의 근거로 삼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보여준다.
◆르망에서 검증받는 '제네시스 마그마'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올해 WEC에 처음 참가했다. 데뷔 시즌부터 르망 24시간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무대에 오르는 만큼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안정성과 데이터 축적이다. 제네시스는 지난달 벨기에에서 열린 WEC 2라운드 스파-프랑코샹 6시간 레이스에서 포인트를 획득하며 초기 경쟁력을 확인했다.
스파-프랑코샹 경험은 르망을 앞둔 예열 과정이었다. 6시간 레이스에서 확보한 차량 세팅, 피트 운영, 드라이버 교대, 타이어 관리 경험은 24시간 레이스에서 더 복잡한 변수로 확대된다. 레이스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량의 기계적 안정성뿐 아니라 팀 전체의 판단 속도와 의사결정 체계가 중요해진다.

스페셜 리버리가 적용된 GMR-001 #19. ⓒ 제네시스 브랜드
제네시스가 르망에서 완주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은 현실적인 목표 설정이다. 하이퍼카 클래스에는 이미 장기간 모터스포츠 경험을 축적한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신생 팀이 첫 출전부터 우승 경쟁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차량 신뢰도와 팀 운영 능력을 입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순위나 포인트를 확보한다면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데뷔 시즌 성과는 한층 커질 수 있다.
이시혁 제네시스사업본부장(전무)는 르망 24시간을 "한국 브랜드 최초로 도전하는 무대이자 제네시스가 글로벌 모터스포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레이스를 통해 일반 차량 개발 과정에서는 얻기 어려운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향후 고성능 양산 모델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제네시스의 고성능 전략이 레이스 경험을 제품 개발로 연결하려는 방향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모터스포츠에서 얻은 데이터는 극한 상황에서 차량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냉각, 열 관리, 공력 성능, 내구성, 전자제어, 타이어 마모, 에너지 운영 등 양산차 개발에도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제네시스가 마그마를 독립된 이미지 전략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레이스 경험을 실제 차량 개발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마그마 GT 콘셉트 외장. ⓒ 제네시스 브랜드
GMR-001 하이퍼카에 적용된 스페셜 리버리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제네시스는 르망 데뷔에 맞춰 두 대의 차량에 마그마 오렌지에서 짙은 레드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과 한글 '마그마' 레터링을 적용했다. 고성능 레이스카의 속도감과 제네시스의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내려는 구성이다.
리버리 구현에는 프랑스 필름 제조 업체 헥시스가 기술 파트너로 참여했다. 고속주행 중 발생하는 열, 공기 흐름, 이물질, 장시간 노출 환경을 고려한 전용 랩핑 필름이 적용됐다. 단정한 럭셔리 이미지를 쌓아 온 제네시스가 마그마 오렌지와 강한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고성능 브랜드로서 다른 시각 언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마그마로 묶는 퍼포먼스 세계관
이번 르망 24시간 현장에서 제네시스가 레이스 출전만 알린 것은 아니다. 마그마 GT 콘셉트 내장 디자인과 마그마 GT3 콘셉트를 함께 공개하며 로드카와 모터스포츠를 연결하는 퍼포먼스 비전을 제시했다. 르망을 고성능 브랜드 전략을 보여주는 쇼케이스로 활용한 셈이다.

마그마 GT 콘셉트 내장. ⓒ 제네시스 브랜드
마그마 GT 콘셉트는 2인승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로 기획된 모델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내장 디자인은 트윈 콕핏 구조와 드라이버 중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아날로그 계기와 물리적 조작 요소를 통해 운전자의 감각적 경험을 강조했고, 디지털 정보는 운전자 집중도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마그마 GT3 콘셉트는 모터스포츠 영역 확장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양산을 염두에 둔 차라기보다 GT3 기술 규정을 반영한 독자 콘셉트로 기획됐다. 공력 성능, 냉각 효율, 열 관리, 내구성 등 레이스 환경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됐으며, 대형 프런트 스플리터와 고정식 리어 윙, 레이스 디퓨저 등 기능 중심의 공력 장치가 적용됐다.
마그마 GT와 마그마 GT3 콘셉트는 제네시스가 만들고 싶은 고성능 이미지의 두 축을 보여준다. 하나는 도로 위에서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트랙에서의 기능 중심 성능이다. 두 방향을 함께 제시한 점은 제네시스 마그마가 한정판 디자인 패키지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제품군과 모터스포츠 활동을 아우르는 브랜드 체계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네시스 X 그란 컨버터블 콘셉트 재공개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제네시스는 르망 시내 드라이버 퍼레이드에서 G90을 베이스로 한 아키텍처 스터디에 마그마 디자인을 강화한 콘셉트 모델 2대를 선보였다. 퍼레이드에는 제네시스 브랜드 앰버서더이자 레이싱 어드바이저인 재키 익스와 리저브 드라이버 제이미 채드윅이 직접 참여했다. 르망의 역사성과 제네시스의 새 브랜드 서사를 연결하려는 선택이다.
제네시스의 이번 르망 행보는 유럽 전략과도 맞물린다. 제네시스는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에 이어 내년에는 폴란드,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덴마크까지 진출해 유럽 11개 국가에서 판매 거점을 확보할 계획이다.
유럽 프리미엄 시장은 브랜드 전통과 성능 이미지를 강하게 평가하는 시장이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오랜 시간 모터스포츠 경험을 통해 기술력과 성능 이미지를 쌓아 온 만큼, 제네시스 역시 럭셔리 디자인과 상품성만으로는 차별화에 한계가 있다. 르망 출전은 유럽 소비자에게 제네시스가 어떤 브랜드로 기억될지를 바꾸는 장기 작업의 일부다.

제네시스 X 그란 컨버터블 콘셉트. ⓒ 제네시스 브랜드
관건은 르망에서 얻은 경험이 실제 양산차와 브랜드 경험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다. 모터스포츠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영역이다. 출전 사실만으로 고성능 브랜드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레이스에서 확보한 데이터, 마그마 차량 개발, 고객 접점 확대, 유럽 판매 기반 강화가 함께 움직일 때 제네시스의 르망 도전은 브랜드 자산으로 남을 수 있다.
제네시스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강한 인상보다 지속적인 증명이다. 완주를 통해 차량과 팀 운영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그 경험을 고성능 양산 모델과 고객 경험으로 옮겨야 한다. 르망 24시간은 제네시스가 세계 프리미엄 시장에서 고성능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큰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