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HMM(011200)의 매각 시계가 다시 느려지는 분위기다. 지난 2024년 하림그룹 인수 협상 결렬 이후 재매각 가능성은 꾸준히 거론됐지만, 정작 공동 최대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는 매각보다 '부산 이전'과 '글로벌 선사 육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핵심은 매각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또 다른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기업 정상화 이후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 정책금융기관이고, HMM 지분 보유가 건전성 지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다만 해진공 시각에서 HMM은 회수 대상 자산이기 전에 한국 해운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결국 HMM 매각은 가격과 후보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팔 것인가'보다 '국적 원양선사를 어떤 방향으로 키운 뒤 넘길 것인가'가 더 중요한 쟁점으로 올라선 셈이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의 최근 발언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안 사장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해양기자협회 기자간담회에서 HMM 매각과 관련해 "아직 산업은행과 HMM 매각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매각 절차가 당장 본격화될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우선순위다. 안 사장은 "정책 우선순위는 매각보다 부산 이전에 방점이 있다"며 "부산 이전이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면 매각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HMM 매각 논의가 지분 정리 차원을 넘어, 본사 이전과 산업적 방향성 정립 이후의 과제로 밀려났다는 의미로 읽힌다.
◆매각보다 방향성…해진공이 던진 신호
해진공의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HMM을 서둘러 매각하기보다, 매각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을 산업적 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이는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HMM이 정상화된 만큼 지분 회수가 출구전략이다. 반면 해진공은 HMM을 국적 원양선사이자 해운 물류 안보의 축으로 본다. 같은 최대주주지만 산업은행은 회수 시점을, 해진공은 육성 방향을 먼저 보는 구도다.
안 사장이 산업은행의 조기 매각 필요성과 관련해 "산업은행은 매각이 급하다고 하고 해운 쪽에서는 신속한 매각보다 HMM을 어떻게 글로벌 선사로 키울 것인가를 이야기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 대목과 맞닿아 있다. 결국 해진공은 HMM 매각의 선결 조건을 가격이나 후보군이 아닌 '방향성'에서 찾고 있다.
부산 이전은 그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첫 단계다. 해진공은 HMM 본사 이전 계획과 로드맵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연내 이전 완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노사 합의, 기능 재배치, 인력 이동, 법인 소재지 변경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전 작업이 매각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수 후보자 입장에서는 HMM의 본사 위치와 조직 안정성, 핵심 인력 이탈 가능성, 부산 이전 이후의 운영 효율성을 모두 계산해야 한다. 매각 주체 역시 이전 로드맵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주인을 찾기 어렵다.
다시 말해 부산 이전은 지역 이전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 HMM을 수도권 중심의 글로벌 해운사로 둘 것인지, 부산을 축으로 한 해양금융·물류 클러스터의 핵심 기업으로 재배치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 방향이 정리되지 않으면 매각 조건도, 인수 후보군도, 매각 이후 지배구조도 선명해지기 어렵다.
◆회수 vs 육성…꼬인 매각 방정식
HMM 매각이 다시 복잡해진 배경에는 공동 최대주주 체제가 있다. 산업은행은 회수와 건전성 관리를 고민하고, 해진공은 해운산업 경쟁력과 국적선사 육성을 우선한다. 두 기관 모두 HMM 정상화의 핵심 주주지만, 바라보는 좌표는 다르다.
실제 HMM은 현재 산업은행과 해진공이 각각 35.42%, 35.08%를 보유한 사실상 공동 최대주주 체제다. 양 기관의 합산 지분율은 70.50%다. 국민연금공단도 5.01%를 보유한 주요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공적 주주가 압도적 지분을 쥐고 있는 구조 자체가 HMM 매각 논의를 복잡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산업은행의 부담도 작지 않다. 강석훈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HMM 지분 매각 필요성을 언급하며 "HMM 주가가 1000원 오르면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0.09%포인트가량 떨어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 HMM 주가 상승이 산은에는 오히려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4월 HMM 노사는 30일 본사 부산 이전에 합의했으며, 노사합의서 서명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HMM
강 전 회장이 "손 놓고 있기에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빠른 매각 필요성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은행 관점에서 HMM 지분은 정상화 이후 계속 보유할 자산이라기보다, 적절한 시점에 정리해야 할 정책금융의 과제다.
다만 HMM 매각은 산은의 의지만으로 끝낼 수 없다. 산은과 해진공이 비슷한 지분율로 HMM을 지배하고 있는 만큼, 매각 방식에 따라 경영권의 성격도 달라진다. 일부 매각은 새 인수자의 경영권 매력을 떨어뜨리고, 일괄 매각은 거래 규모를 키워 후보군을 좁힌다.
2024년 하림그룹 인수 협상 결렬도 이 한계를 보여줬다. 당시 쟁점은 가격만이 아니었다. 영구채 전환, 주주 간 계약, 재무적투자자의 지분 의무보유 등 매각 이후 경영권 안정성과 공적 통제 장치를 둘러싼 이견이 컸다.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도 국가 기간 해운사에 대한 정책적 관여를 완전히 내려놓기 어려웠고, 인수자 입장에서는 거액을 투입하고도 온전한 경영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부담이 있었다.
결국 HMM 매각은 '누가 살 것인가'보다 '어떤 조건에서 경영권을 넘길 것인가'의 문제다. 해운업은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이다. 운임이 좋을 때는 현금창출력이 커 보이지만, 업황이 꺾이면 선박 투자 부담과 운임 하락 압력이 동시에 커진다. 새 주인이 단기 수익성에 집중할 경우 HMM의 장기 선대 투자와 국적선사로서의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남는다.
해진공이 해양금융과 선주사업, 해양자산거래소 구상을 함께 꺼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안 사장은 해진공의 향후 역할에 대해 "금융을 기반으로 해양 산업의 친환경 전환과 디지털 AI 전환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HMM을 개별 매각 대상이 아니라 부산 중심 해양금융 생태계와 연결된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흐름을 종합하면 HMM 매각은 당분간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정리하는 국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매각 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매각의 전제조건은 이전보다 복잡해졌다. 산업은행의 회수 논리만으로는 부족하고, 해진공의 해운정책 구상만으로도 답을 내기 어렵다.
이제 HMM의 새 주인을 찾는 일은 지분 정리 차원의 거래가 아니다. 한국 해운산업의 대표 선사를 어떤 방식으로 민간에 넘길 것인지, 그 이후에도 국가 해운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먼저 정해야 하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