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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50년 전 '파리의 심판' 주인공, 한국 경매 오른다

신세계엘앤비, 샤또 몬텔레나 보 배럿 오너 초청…프리미엄 와인 공략 강화

이인영 기자 | liy@newsprime.co.kr | 2026.05.22 09:13:08
[프라임경제] 잔에 담긴 옅은 금빛 와인은 반세기 전 파리의 한 시음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프랑스 와인이 세계 와인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1976년, 미국 나파밸리의 무명에 가까웠던 샤도네이가 프랑스 최고급 화이트 와인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사건. 이른바 '파리의 심판'이다.

그로부터 50년. 미국 와인의 위상을 바꾼 그 와이너리,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시간이 서울에서 다시 펼쳐졌다.

보 배럿(Bo Barrett) 샤또 몬텔레나 오너 겸 최고경영자(CEO). = 이인영 기자


신세계L&B(엘앤비)는 지난 21일 서울에서 보 배럿(Bo Barrett) 샤또 몬텔레나 오너 겸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브랜드 히스토리와 주요 와인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의 중심에는 단순한 와인 시음이 아닌, 1976년 '파리의 심판' 50주년이라는 상징성이 놓여 있었다.

샤또 몬텔레나는 1882년 설립된 나파밸리의 대표 와이너리다. 금주령 이후 한동안 방치됐던 이 와이너리는 1972년 짐 배럿(Jim Barrett)이 인수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1973년 빈티지 샤도네이가 프랑스의 유수 화이트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와인사에 이름을 새겼다.

이 사건은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 같은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우승 와인인 샤또 몬텔레나 1973 샤도네이는 현재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도 소장돼 있다. 링컨의 모자, 암스트롱의 우주복처럼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물건들과 함께 전시될 만큼 그 의미가 크다.

이날 보 배럿은 샤또 몬텔레나의 차별점으로 '장소'를 강조했다. 와인의 맛은 결국 포도가 자라는 땅과 온도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샤또 몬텔레나가 자리한 칼리스토가는 나파밸리 북단, 마운트 세인트 헬레나 인근에 위치한다. 충적토와 화산성 토양, 점토질이 복합적으로 얽힌 토양은 포도에 복합미를 더하고, 낮과 밤의 큰 기온 차는 포도의 숙도와 산도를 결정한다.

그는 "와인이 특별한 이유는 장소에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같은 나파밸리 안에서도 칼리스토가는 레드 품종에 적합한 강한 일교차를 지닌 반면, 샤도네이 등 화이트 품종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로스 카네로스 인근 포도밭에서 재배된다. 결국 와인의 개성은 양조 기술만이 아니라 토양, 기후, 고도, 수확 시점이 겹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시음은 포터밸리 리슬링으로 시작됐다. 일반적인 유통 제품이라기보다 와이너리 방문객이나 주요 고객에게 제공되던 희소한 와인으로 소개됐다. 과실 향이 선명하면서도 산도가 살아 있었고, 프렌치 오크와 스테인리스 숙성을 병행해 리슬링 특유의 생동감을 살렸다. 보 배럿은 이 와인 역시 장기 숙성 잠재력을 갖춘 프리미엄 리슬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보인 나파 소비뇽 블랑은 샤또 몬텔레나 라인업 중 비교적 늦게 탄생한 '막내'로 소개됐다. 소비뇽 블랑에 세미용과 소비뇽 그리 등을 더한 보르도 블랑 지향의 블렌딩이다. 흔히 떠올리는 뉴질랜드식 소비뇽 블랑처럼 풀 향과 산도가 전면에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라, 숙성 가능성과 구조감을 염두에 둔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에 가깝다.

행사의 무게중심은 세 번째 와인인 샤도네이에서 뚜렷해졌다. 샤또 몬텔레나의 샤도네이는 1976년 '파리의 심판'을 통해 미국 와인의 지형을 바꾼 바로 그 품종이다. 이날 소개된 최신 빈티지는 강하면서도 순수한 아로마, 우아한 질감, 장기 숙성 가능성을 특징으로 했다.

보 배럿은 샤또 몬텔레나가 유행에 따라 스타일을 크게 바꾸는 와이너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도한 오크나 진한 과실미에 의존하기보다, 산도와 균형감, 포도밭의 개성을 유지하는 것이 몬텔레나의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반세기 전 파리에서 인정받은 철학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와인 시음회에서 선보인 샤토 몬텔레나 와인들. ⓒ 신세계L&B


이날 공개된 또 하나의 화제는 1973년 샤도네이 경매 계획이었다.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차지한 바로 그 빈티지다. 현재 와이너리에 극소량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와인 중 한 병이 한국에 들어와 오는 6월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최근 해외 경매에서 약 4000만원 선에 거래된 사례도 언급됐다.

신세계엘앤비는 경매 수익금을 기부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경, 취약계층 의료, 교육, 전통문화 등 사회공헌 테마를 중심으로 기부처를 협의하고 있으며, 최종 기부처는 경매 이후 확정될 예정이다.

후반부에는 에스테이트 칼리스토가 진판델과 나파 까베르네 소비뇽, 에스테이트 칼리스토가 까베르네 소비뇽이 이어졌다. 특히 진판델은 일반적인 캘리포니아 진판델처럼 농밀하고 점도 높은 스타일이 아니라, 톤다운된 피노 누아를 연상시키는 절제된 질감이 특징으로 소개됐다. 보 배럿이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고투 와인'이라는 설명도 더해졌다.

까베르네 소비뇽은 샤또 몬텔레나의 장기 숙성 철학을 보여주는 라인이다. 나파 까베르네 소비뇽은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을 더한 보르도 블렌딩 스타일로, 에스테이트 칼리스토가 까베르네 소비뇽은 샤또 몬텔레나의 하이엔드 와인으로 소개됐다. 보 배럿은 수십 년 뒤에도 우아함을 증명할 수 있는 나파 까베르네는 많지 않다며 몬텔레나의 숙성 잠재력을 강조했다.

신세계엘앤비와 샤또 몬텔레나의 협업도 이날 주요 화두였다. 양측이 직수입 관계를 맺은 지 약 1년이 됐으며, 가족 경영 와이너리인 몬텔레나의 품질 중심 철학과 신세계엘앤비의 유통·마케팅 역량이 결합한 구조다.

프리미엄 와인 시장에 대한 시각도 분명했다. 최근 저가 와인 시장은 소비 둔화와 논알코올·저도주 트렌드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샤또 몬텔레나와 같은 상위 프리미엄 와인은 다른 소비층을 기반으로 한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많이 드는 생산 방식과 장기 숙성 가치를 이해하는 소비자는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게 보 배럿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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