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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이의 ICO 참여 '피말랐던 2개월'

'떡상'과 '나락' 사이 ICO, 달콤한 유혹···불법인지도 몰라

김기영 기자 | kky@newsprime.co.kr | 2021.05.13 10:22:44
[프라임경제] "제게 ICO에 참여했던 지난 두 달은 생지옥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수익을 냈지만 두 번 다시 ICO에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ICO에 참여했던 코린이(코인+어린이의 합성어로 암호화폐 초보투자자를 일컫는 말) 투자자 A씨(27)는 단호했다. ICO를 통해 300% 이상 수익을 거뒀다는 그가 왜 ICO를 악몽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먼저, ICO(Initial Coin Offering)란 '암호화폐 공개'라는 의미로 새로운 암호화폐 발행을 위해 투자자들로부터 초기 개발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를 말한다. 발행사는 투자 대가로 코인을 배분한다. 지난 2017년 9월 정부는 사기·투기 사례가 늘어난 이유로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했으며, 투자자의 국내·해외 ICO 참여는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A씨는 ICO 참여자였음에도 "불법행위라 인지조차 못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투자자 모집은 주로 암호화폐 정보공유 목적으로 개설된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이뤄진다. 코린이들의 접근성이 좋고 익명성이 보장돼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풀대출 A씨의 영끌 ICO 올인

A씨는 암호화폐 커뮤니티 글을 읽고 텔레그램을 통해 ICO에 발을 들였다. 급등 코인 종목에 투자했다가 첫 투자금인 300만원을 대부분 잃은 직후였다. 빠른 복구를 위해 급등 코인 소스를 찾던 중 "큰 수익률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현혹돼 ICO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A씨. 그는 대출까지 내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를 감행했다.

대출받은 돈으로 ICO 투자를 감행한 A씨. = 김기영 기자

"저희 코인은 기존 ICO토큰처럼 겉만 번지르한 사업 아이템이 아닌 앞으로의 가상화폐 시장의 미래, 즉 이더리움 및 디파이 코인과 상생하는 것, 낮은 발행량을 통해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당시 ICO를 진행했던 대표가 텔레그램방에서 공지한 내용이다. A씨는 "큰 손실로 이성적인 사고가 힘든 상황에 공지를 보고 온갖 희망회로와 부푼 꿈을 갖게 됐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암호화폐 생태계를 잘 모르는 코린이나 손해가 막심해 이성적인 사고가 힘든 투자자들이 쉽게 동조할 내용이다.

텔레그램 방에 입장한 A씨는 '지금 구매 시 1차 세일 가격에 코인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덜컥 1이더리움(당시 시장가 200만원)을 지불했다. 그는 "대출금 절반 이상인 1이더리움을 투자하는 걸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다"며 "이미 수익 후 소비계획까지 세웠었죠"라고 고백했다.

허나 그의 행복한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투자자 중 한 명이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텔레그램 내 말투와 활동 시간 등을 근거로 ICO 소개자와 ICO 대표자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더리움 재단에 '이더리움' 이름을 빌려준 적 있냐고 메일을 보냈는데 '그런 일이 없다'는 답장을 받은 일 △ICO 재단 측에서 발표한 백서 내 'ETHEREUM' 표기가 'ETHREUM'로 오기된 상황이 불신에 불을 지폈다. 

◆투자자 환상 먹고사는 'ICO사기'

A씨는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이 만든 오픈채팅방에 입장했다. 음모론자는 "ICO가 투자자의 환상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라며 "과거에도 스캠(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투자자를 현혹시켜 투자금을 유치한 뒤 파산하거나 잠적하는 행위) ICO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됐는데 딱 봐도 스캠인 곳에 왜 투자를 하냐"며 투자자들을 힐난했다.

A씨를 혼란에 빠트린 한 투자자가 제기한 음모론. = 김기영 기자

음모론자의 말을 들은 A씨는 환불을 요청했지만 ICO 대표자는 "우리 재단은 스캠코인이 아닌 지속해서 발전시켜나갈 코인을 만들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말하며 환불을 거절했다고 한다. A씨는 "투자금을 더 모으기 위해 시간을 끄는구나. 완전히 사기당했다고 자포자기했다"고 당시 감정을 전했다.

부랴부랴 ICO 피해 사례들을 찾아본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다수였음을 확인한 뒤 절망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익명성과 보안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앱 특성상 대표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고 한다. "200만원이 애초에 내 돈이 아니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합리화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온 몸을 지배했어요"라는 그의 회상에서 괴로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익명의 암호화폐 리딩방 운영자는 "ICO 사기 형태는 비슷하다. 커뮤니티에 정보공유 카톡방 주소를 올려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후 암호화폐 지식을 자랑·전문가처럼 행동하고 높은 수익률 보여줌으로써 믿음을 산다. 후에 투자자에게 ICO 정보를 흘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투자금을 유치한 뒤 잠적한다"며 "그들은 투자자들의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먹고 사는 암적 존재"라고 일갈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상장 사기 제보 채널이 개설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61건의 상장 사기 제보가 접수됐는데 그 중 80%가 '거짓 상장 정보로 투자 유인 후 연락두절' 사례였다. 가상화폐 정보공유 혹은 리딩방에서 나온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은 사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ICO 참여는 엄연한 불법···애초에 발 담그지 말아야

다행히 약 두 달이 흐른 뒤 A씨가 투자한 코인은 B거래소에 상장됐다. 상장 소식을 접한 그는 곧장 전량 매도해 수익을 실현했다. 시세 확인도 하지 않고 매도했다는 그의 모습에서 ICO 투자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매도 후 거래소와 지갑, 텔레그램 방까지 전부 삭제했습니다. 수익을 냈다는 기쁨보다 ICO에 얽매였던 불안감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라며 당시 감정을 전했다.

A씨가 투자한 코인은 다행히 B거래소에 상장됐다. ⓒ A씨 제공

A씨 비록 사기를 당하지 않고 수익을 냈지만, 전전긍긍하던 시기 ICO 사기 사례를 보면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온갖 희망회로와 부푼 꿈을 가득 안고 암호화폐 시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투자자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하며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암호화폐 시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ICO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것을 보면 일확천금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마이너 암호화폐 거래소에는 코인마켓캡(암호화폐 가치·정보 등을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등록도 안 된 코인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ICO참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난무하는 사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투자로 큰 돈을 벌었음에도 당시를 악몽으로 회상하는 A씨를 보면서, 사기성 ICO가 건전한 시장 형성을 저해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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