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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선의 이론조론: 매뉴얼(Manual)사회와 관행(慣行)사회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press@newsprime.co.kr | 2014.04.28 10:18:25

[프라임경제] 지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발생했다. 지면을 빌어 이번사고의 모든 희생자와 유가족 분들에게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하며, 다시는 이러한 슬픔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이번 글에서 필자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분노하고, 누군가의 책임과 무능을 성토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선 말하고자 한다. 너무 참담하고 슬픈 사고를 접하고 보니,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조차 두렵고, 이번 사고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담하기만 한 이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문제시 되는 것 중 하나가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과 이와 관련된 매뉴얼(Manual)이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주변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한 것들을 발견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유명무실'의 대가가 이렇게 참혹할지 누가 알았을까?
 
이처럼 이번 사건에서 재난대응과 관련된 매뉴얼 부재가 지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3000여개에 달하는 재난대응매뉴얼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과거에 만들어진 매뉴얼이 검증되거나 변경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만 존재했다는 데 있다. 
 
국토부를 비롯한 정부기관에서는 재난상황별 초동조치 매뉴얼을 전면 개편키로 했으며, 보다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수시훈련을 통해 실행력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난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됐을 때 각국의 언론,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온 이야기가 일본의 매뉴얼 신봉에 대한 병폐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필자도 일본인은 매뉴얼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구호물품이 쌓여 있는데도 매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배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국가적인 재난상황에도 매뉴얼에 없다고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그런 것이다. 
 
일본의 소심하고 융통성 없는 면을 조롱하거나 폄하하기에 적절한 예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매뉴얼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한국사회는 관행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라는 말이 당연한 조언이 되고, 원칙이나 규정을 운운하다가는 '융통성이 없다' '무능하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의 한 글에서 외국의 한 교수가 우리나라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기자에게, 한국의 학생들은 '집요하다'라는 평가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심 찔리는 면이 있어서 그랬는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외국 학생들 같은 경우 성적이나 학사행정과 관련된 문제가 있으면 한두 번 정도 물어본 이후에는 대부분 수용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집요할 정도로 협상(Negotiation)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규정상 안 된다거나 자격이 불충분한 경우에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딜(Deal)이라고 하는 거래를 통해서라도 성취해야 유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규정상 불가한 일을 만들어 내면 인정받고 성공의 기회를 선점하게 된다. 
 
걸리지 않고 현명하게 약속과 규정을 어길수록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는 상류층으로 갈수록 그 만큼 불법과 관행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고, 이후에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고위 공무원의 인사청문회가 그토록 어렵게 진행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 큰 문제는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사회의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조차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관행과 배짱, 인정에 기반한 결정을 빈번히 선택한다는 것이다.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그렇기 때문에 필자 자신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책감을 갖는다. 
 
매뉴얼사회와 관행사회 중 어느 극단적 모습이 아닌 인간생명과 보편적 가치가 존중되고, 약속과 규정을 준수한 사람이 상대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또 관행과 편법으로는 어떠한 이익도 취할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세월호 사건'과 같은 부끄러운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한 번 이번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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