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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선의 이론조론: 글로벌경제와 통신도청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press@newsprime.co.kr | 2014.02.19 08:50:22

[프라임경제] 전 세계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자국과 외국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 교류하고 있다. 더 이상 국산제품, 솔루션이라는 명분으로 자국시장의 차별적 혜택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이며, 우리나라와 같이 해외수출의 비중이 높은 나라로서는 이러한 추세는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美)국가안보국 (NSA)의 통신도청 파문은 통신과 IT분야에서의 글로벌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전직 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디언지의 한 저널리스트를 통해 폭로한 NSA의 통신도청 활동은 그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자 음모론의 전형과 같았던 빅브라더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사건이었다.

인터넷과 데이터 분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 (Big Brother) 이야기를 진부할 정도로 자주 언급하곤 하는데 이번 폭로를 보면 조지오웰의 선견지명에 탄복할 만큼 정확한 일치를 보여준다.

스노든의 폭로로 그 실체가 널리 알려진 에셜론(Echelon)과 프리즘(Prism)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로 만들어진 강력한 정보수집과 감시체계다. 120여개의 첩보위성을 사용한 통신감청망인 에셜론은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공조로 운영되는 막강한 통신감청 네트워크이며, 프리즘은 인터넷과 통신회사의 중앙서버에 접속해 사용자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DB화 할 수 있는 첨단 IT시스템이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적대관계이던 우방이던 관계없이 전 방위적으로 대통령 등 주요 인물들의 통신을 도청하고 정보를 무단 수집했으며, 정치뿐이 아닌 민간 경제 분야에서까지 이러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굳이 인종적인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5개 국가는 앵글로색슨족의 국가로서 이를 '다섯 개의 눈 (Five Eyes)'라고도 부른다고 하니 입맛이 영 개운치 않다.

필자는 이런 사건과 관련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세계 각국은 이미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의도·감청 활동은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지 미국 못지않은 규모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실, 이번 스노든이 폭로한 사건은 통신도청 활동이 폭로되고 노출된 것이 문제이지, 걸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사건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반성하고 일체의 통신도청과 정보수집, 분석활동을 멈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또한 방법과 수위는 달라지겠지만, 미국 정부가 지금의 활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결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계 각국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치밀하고 은밀한 정보수집과 분석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전 세계가 첨단 IT기술과 솔루션으로 엮여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내의 통신기술과 인프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통신 분야는 민간분야이면서도 그 공공성과 사회적 영향이 지대한 분야이다.

하지만 국내 통신시장은 외산 솔루션으로 완전히 도배돼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오히려 대기업과 공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외산 글로벌 기업들과 통신 인프라와 관련된 거대한 빅딜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빅데이터로 각광받는 데이터분석 분야는 이미 외산 솔루션의 독무대라고 할 정도이다.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필자의 이야기가 결코 우수한 외산 솔루션을 배제하자는 국수주의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안전과 정의도 우리에게 힘과 능력이 있을 때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구글(Google)의 비공식적인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생경함과 생뚱맞음이, 충분히 사악해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존재가 의지와 신념을 갖고 지켜야 할 만큼 어려운 숙제일 수도 있겠다는 공감으로 다가온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미래와 안전을 누군가의 양심과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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