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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증정용 서적 부정하게 팔아먹으면? 배임 혹은 횡령?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3.06.23 17:21:26

[프라임경제] 최근 모 국가기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증정용으로 들어온 책을 장서에 편입시키지 않고 몰래 뒤로 빼돌려 팔다 논란이 된 바 있는데요. 당시 강동원 의원(무소속)의 이 문제 제기는 공직자 기강 해이라는 측면에서도 논쟁거리였지만, 선의로 기증되는 책들이 제대로 관리되는가 이슈화돼 반향이 더 컸습니다.

최근 교보문고에서 증정용 도서로 제작된 책 혹은 잡지(문예지)가 이런 표식을 가린 채 판매돼, 부정한 경로로 흘러나온 책이 서점에 납품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데요. 이런 것이 부정하게 정가로 판매되는 세탁이 이뤄지는 게 사실이라면, 기증을 통해 공공적 기금을 받은 상황에 다시 이익을 취하는 게 되지요. 더욱이 국민들에에게 공짜로 보도록 한 책을 돈을 정가대로 다 주고 서점에서 구입한 고객들로서는 서점의 부실한 진열 및 판매에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떤 책은 아예 증정용이라는 자체를 작은 스티커를 붙여 '눈 가리고 아웅하는 최소한의 절차'조차 없이 버젓이 "나, 공짜책이오"하고 증정용 상태 그대로 팔렸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 같이 공공기금 지원작으로 선정된 물량이(도서관 등에 전달됐어야 할 책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나가 팔렸다면 유출한 사람은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요? 여러 경우를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우선 책을 전달(자금을 주는 공공기관이나 단체로, 혹은 전달수혜 대상자에게 직접) 해야 할 책임을 진 출판사에서 흘러나온 경우와, 책을 걷어들이고 이를 관리, 전달하고 영수증 수집과 보관까지 맡는 경우(기관에서 이를 위탁받은 자)를 좀 달리볼 수 있습니다.

'업무상'이 붙는 것은 일단 제외하고요, 배임이냐 횡령이냐가 관건이 될 텐데요.

우선 책을 출판사에서 받아오고, 보관하고, 공공적 목적에 맞는 사람이나 기관에 전달(배송)하고 영수증을 받아내는 역할을 위탁받은 자가 부정하게 책 중 일부를 빼돌린 경우라면  횡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자가 그 재물을 취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입니다. 따라서 죄의 성립을 위해서는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일 것을 요하고요. 위임을 받은 자는 이를 위임자를 위하여 보관하는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1인 주식회사 주주가 회사의 재산을 임의로 소비해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면, 주식회사와 1인 주주는 별개의 인격이므로("내 회사 재산 내가 쓰는데!"라는 항변은 통하지 않음) 범죄가 성립합니다.

또 대법원은 횡령죄의 위탁관계란 사실상의 관계면 족하다고 했으므로 위탁자에게 유효한 처분을 할 권한이 있는지, 수탁자가 법률상 그 재물을 수탁할 권리가 있는지도 불문한다(대판 2004.5.27, 2003도6988)고 하므로, 법적 계약으로 위탁된 책을 빼다 파는 경우라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출판사 자신이 일정한 기금 수혜자로 선정된 이후, 이를 직접 일정한 곳들에 전달할 책임을 지는 경우라면, 배임 가능성을 따져봐도 흥미롭겠습니다.

  우수문예지 지원 방식. 책을 제공할 책임을 기금을 받은 출판사에게 지우고 있다. ⓒ 한국문학예술위원회  
우수문예지 지원 방식. 책을 제공할 책임을 기금을 받은 출판사에게 지우고 있다. ⓒ 한국문학예술위원회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의 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문학나눔의 경우 책을 받아들이고 보관, 전달하는 사무를 위탁해 운영한다. 사진은 무료 제공용 책 중 일부가 흘러나와 일반에 판매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한유주 작가의 '얼음의 책'(문학과지성사)가  기금지원 대상임을 나타낸 화면. ⓒ 문학나눔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의 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문학나눔의 경우 책을 받아들이고 보관, 전달하는 사무를 위탁해 운영한다. 사진은 무료 제공용 책 중 일부가 흘러나와 일반에 판매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한유주 작가의 '얼음의 책'(문학과지성사)가  기금지원 대상임을 나타낸 화면. ⓒ 문학나눔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배임의 행위에 의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가 이를 취할 수 있게 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범죄입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기차역장이 단체여행을 주최하고 그 비용을 보관하는 것을 배임죄의 업무상 보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 이중매매가 배임에 해당하는가도 오랜 논쟁거리였는데요. 돈을 받고 다른 데 건물 등을 팔아먹은 경우, 이는 매수자에게 등기처리해 줘야 할 타인사무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011년 판례에서는 이 경우 배임 성립(액수가 커서 형법상 배임이 아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처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있습니다. 즉, 일단 판 부동산을 두번째 매수자에게서 되사들여서(다시 되찾아서) 원매수자에게 넘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타인사무를 이행불능에 빠지게 하거나 위험성이 있었으면 배임은 성립한다고 봤습니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똑같은 책 무한정 다시 찍으면 될 것 같지만, 일단 납품용으로 만들어 이 표식이 책 어느 구석에 인쇄돼 있거나, 혹은 스티커를 부착했다면 '특정'이 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물건들을 허수룩하게 전달할 업무를 게을리하고 재산상 이익을 봤다면,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그냥 똑같은 책 그만큼 다시 만들어 채워 줄게"로 나이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정된 그만큼의 물건이 전달될 가능성이 0으로 떨어졌던 그 위험에 처했다는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대강의 구조는 이렇고요. 매 케이스마다 부정한 유출, 판매의 구조가 다르고 다른 이야기들이 더 숨어 있을 수 있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또 실무상 횡령이냐 배임이냐를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고요, 구조를 골치아프게 따져서 갈라놓을 만큼 두 죄 사이에 처벌 강도가 큰 차이가 없다는 소리도 나옵니다. 죄가 되는가 아닌가 사실관계를 심각하게 따지지, 법조문 적용은 검사가 기소한 대로 법원이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왜 그런가 보면요, 횡령죄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임을 배반한다는 점에서 배임죄와 본질이 같은데요, 횡령죄의 객체가 재물임에 비해 배임죄는 객체를 재물 이외의 재산상 이익으로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하나의 행위로 두 죄를 모두 요건 충족을 한다면, 횡령죄가 배임죄에 대한 특별관계로 한 죄만 성립(횡령만)한다고 합니다. 서로 모호하면서도 가까운 경우인 것이지요. 어쨌든 공공기금을 받거나 기증을 받는 경우, 그런 좋은 목적에 무상으로 전달돼야 할 책을 몰래 빼다 판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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