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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탐방 ⓛ] '행복을 파는 장사꾼'…"협업이 핵심"

'1000일간 시들지 않는 꽃'처럼…제품력으로 일반기업과 당당히 경쟁

나원재 기자 | nwj@newsprime.co.kr | 2013.01.23 14:42:00

[프라임경제] 서울 강서구청 인근 2차선 도로변 어느 한적한 골목. 되살아난 동장군(冬將軍)의 기세에 혹시라도 살이 아릴까 옷깃을 여미는 행인과 가게 문 앞을 천막으로 꼭꼭 감싼 가게들이 찌푸린 인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사회적기업 '행복을 파는 장사꾼'을 찾아 나선 길. 그리 오랜 시간을 걷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바람에 등 떠밀린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덧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3층에서 문이 열리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따스함을 풍기며 귓속으로 들어왔다
  
지난 1월17일 한 주의 반이 흐른 목요일이었지만 사무실 여기저기 쌓인 꽃과 박스를 보자니 안 바쁜 날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말 걸기가 미안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사가 눈웃음을 지으며 반긴다.

중년의 여사는 '행복을 파는 장사꾼'의 정명옥 센터장으로, 간단한 인사 후 곧바로 사무실과 작업실을 소개했다. 이곳은 크게 사무실과 비누꽃 등 제품을 만드는 작업장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과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직원들까지 누구 하나 멀뚱히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활기찬 사업장. 이곳의 강렬한 첫 인상이다.

고용노동부 정식 인증까지 '시행착오' 여러번

장애인 보호작업센터 사회적 기업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온라인을 통해 '비누꽃'과 1000일간 시들지 않는 꽃 '프리저버드' 판매하며, 최근 인쇄사업까지 확장했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사업장은 지난 2007년 시설인가를 받고, 노동부 예비 사회적기업과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각각 1년씩 운영됐다.

하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예비 사회적 기업에 서울시 등 정부 지원은 어쩔 수 없이 삭감됐다. 결국 1년을 더 운영해야 자격요건이 주어지는 상황을 과감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제대로 된 준비로 이듬해인 2010년 고용노동부 정식 인증을 받게 된다.

이러한 '행복을 파는 장사꾼'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옥션이 전국 장애인 중 선발한 인원을 대상으로 숙식을 제공하며 인터넷 쇼핑몰 교육 프로젝트 '나의 왼발'을 진행했다.

당시 2기생으로 수업을 받은 정 센터장의 아들이자 현재 '행복을 파는 장사꾼'의 팀장 김완기씨는 당시 교육 이후 취업보다 사업을 준비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1·2기 사람들을 찾아나서 사업을 시작했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이란 센터명도 교육을 담당했던 선생님의 권유로 그간의 시행착오 등을 옮겨 출간한 수필집의 제목이다.

출발은 아름다웠지만,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구청 등에 제품을 납품하자는 얘기도 이때 나왔다. 정 센터장은 "담당 공무원이 당시 사업이 조잡할 줄 알고 왔다가 인터넷으로 사업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시설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제안에 따라 2007년 예비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게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다. 정 센터장은 "사회적기업은 관공서 등에 의무적으로 판매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며 "바자회에도 힘들게 참여해봤지만 생필품이 아니라 많이 팔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 센터장은 "하지만 '행복을 파는 장사꾼'을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됐다"고 말을 이었다.

   
2006년 태동한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2007년 시설인가를 받았으며 지금은 사회적 일자리 14명, 사회적 기업 전문 인력 2명 등 총 25명 규모로 성장했다. 사진은 직원들이 분주히 손을 놀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

현재 1급 사회복지사로 센터 창립 멤버인 정 센터장은 "그렇게 1년을 진행하다 2008년 지인의 소개로 '비누꽃'으로 상품을 전환했다"며 "첫 납기일을 어렵게 맞췄고, 이후 주문과 거래가 지속돼 매출은 늘어났다"고 말했다.

◆노력하면 된다… 핵심은 '협업'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현재 사회적 일자리 14명, 사회적 기업 전문 인력 2명, 사회복지사 3명에 시설자인 정 센터장과 장애인 근로자 포함 총 25명 규모다.

정 센터장은 "정년퇴직했지만 사회적 일자리로 오신 분들과 사회복지사가 경리와 사이트를 투명하게 운영 중이며, 무척 뛰어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최근에는 사업이 확장돼 관공서 인쇄사업과 함께 SK그룹 계열사의 '쇼핑백'도 연대해 생산하고 있으며, 가수 김장훈과 기아차 'K5' 이벤트에 꽃을 납품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행복을 파는 장사꾼'에도 원칙과 철칙은 있다. 정 센터장은 "사회적기업이라고 해도 일반기업과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정 센터장은 "장애인이라고 봐주면 한 번 밖에 봐주지 않는다"며 "몸이 불편해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최소한 같은 질의 제품을 생산해야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밝혔다.

이어 정 센터장은 "후원하는 분이 있다면 차라리 꽃을 사는 게 낫다고 권유하기도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명옥 행복을 파는 장사꾼 센터장은 품질면에서 사회적기업도 일반기업과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지인들이 후원해도 지속적인 경우는 드물고, 안주하게 되는 반면, 꽃을 판매하면 매출이 늘어나 사무실 구성원들에게 수익을 더 나눌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올해 가장 큰 목표인 쇼핑백 사업에 힘을 싣는 이유도 장애인 친구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어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여유가 따라오기 때문이라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정 센터장은 "건강한 친구들은 짐을 옮기고 쇼핑백에 구멍만 표시하는 친구들까지 급여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두커니 있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며 "예전 친구들도 처음에는 벌이가 시원찮아 당분간 흩어졌지만, 현재 척추장애인협회 사무국장 위치에 오른 친구 등 모두 잘 됐다"고 밝혔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현재 사회복지 시설이면서 사회적기업으로, 앞으로 이를 분리해야 한다. 2년 후 정 센터장은 사회적 시설에서 정년퇴직이 예정돼 있지만 사회적기업은 회사로써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정 센터장은 "노력하면 된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의 핵심은 협업이다"고 짧지만 강한 끝말을 남겼다. 행복을 파는 이들 장사꾼은 행복에 가능성을 더해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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