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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감정노동자 이해하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콜센터 상담사 위한 감정관리 '힐링 프로그램' 필요

양세진 소셜이노베이션그룹 대표 | press@newsprime.co.kr | 2012.09.24 15:02:30

[프라임경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가득한 콜센터. 상담사들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험한 소리에 힘들어 하고 있다. ‘왜 내 허락도 없이 돈을 빼가고 그래, 당장 안 돌려줘, 이 XX야’, ‘건강보험공단이 강도야, 왜 말도 없이 보험료를 올리고 그래’ 등등. 하루에도 수많은 비난 전화에 감정을 다스리고 평온하게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사회현상으로 공론화 시킨 미국의 사회학자 혹실드(Hochschild)는 감정노동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역제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가사가 나오는 가요는 감정노동자들의 실존적인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성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레비나스는 인간을 ‘상처받을 가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있는 실존적인 인간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상처에 열려 있고 상처에 민감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호간에 감정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철학적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점점 더 서비스사회로 발전되면서 가정과 공동체가 담당하던 많은 서비스가 시장화 되고, 게다가 더 높은 고 품질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감정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서비스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있어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기관 역시 국민들에 대한 만족도 증가와 서비스 질의 증대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6년 전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에도 1300여명의 전화 상담을 하는 감정노동자들에 대해 돌봄과 힐링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감정노동자들을 돌봄과 힐링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리더십에 대해 강의하고 조직역량강화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조직의 리더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하는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조직에서 신뢰받는 리더들의 공통된 특징은 탁월한 업무 역량만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요동과 압박 속에서도 평정심을 갖고 소통하고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감정노동의 전문성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즉, 감정노동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곧 한 조직과 공동체에서 리더가 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양세진 소셜이노베이션그룹 대표.
따라서 감정노동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 받는 감정을 치유하고 위로해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요리사가 음식의 전문가이고, 디자이너가 옷을 만드는 전문가인 것처럼, 감정노동자들은 감정 관리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힐링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역량강화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소위 “Beyond healing To Capability” 접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단기적인 실적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공기관부터 먼저 도입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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