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아하!] 증권가vs정치권 전운…'거래세'가 뭐길래

투기 막는다며 시장 짓밟는 근시안이 '毒'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2.09.13 09:51:25

[프라임경제] 지난해 이른바 ‘ELW(주식워런트증권) 특혜 사건’으로 검찰과 정면 대결했던 금융투자업계가 이번엔 여야 정치권과 껄끄러운 마찰음을 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 특히 파생상품 거래세가 논란의 중심입니다.

오는 2016년부터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마다 선물은 0.001%, 옵션에는 0.01%의 세금을 떼어가겠다는 것인데요. 정치권은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파생시장을 바로잡고 투기적 거래(noise trader)를 줄일 수 있는데다 세수 확보까지 가능한 ‘착한’ 법안 이라는 입장입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도 맥이 통하기 때문에 여야 할 것 없이 어깨동무하며 추진하는 모습은 훈훈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업계에는 세수 확보는 고사하고 시장을 고사시킬 악법이라는 볼멘소리가 자자합니다. 한국거래소와 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기관을 비롯해 이익단체인 금융투자협회는 물론 협회와 앙숙인 노조까지 “즉각 철회”를 주장하며 참전을 선언했으니, 그야말로 증권가와 정치권의 ‘여의도 혈전’이 벌어진 셈입니다.

어쨌든 양측의 공식적인 1차전은 12일 오후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불 붙었는데요. 금투협은 이날 오전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여에 걸쳐 사전 설명회까지 진행하며 우호 여론 모으기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여야 국회의원 45명으로 구성된 국회 연구모임인 국가재정연구포럼의 간판을 걸고 박병석 국회 부의장과 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 안 알짜 경제통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업계 대표로는 금투협 박종수 회장이 자리를 지켰지요.

볼만했던 것은 같은 법안을 놓고 한쪽은 ‘착하다’ 다른 쪽은 ‘못됐다’고 주장하는 논리 싸움이었습니다. 먼저 업계 측은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한국세법학회에 의뢰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는데요. 정부가 주장한 세수확보는 허구라고 못 박았습니다.

“거래세 세수만 기준으로 하면 세수 증대 효과는 있다. 그러나 파생상품 거래에 직접 영향을 받는 법인세, 지방세, 교육세까지 고려하면 전체 세수는 감소할 것이다. 2013년에는 671억원, 향후 5년 간 4131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준봉 성균관대 교수)

주장에 따르면 거래량 감소로 금융투자회사의 수수료 수익이 줄어 법인세와 지방세를 낼 여력이 줄어들 것이고 수익금의 0.005% 비율로 과세되는 교육세 부문도 쪼그라들 수 있어 결과적으로 실제 세수는 지금보다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이후) 선물시장은 39%, 옵션시장은 27%의 거래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파생시장과 밀접한 현물시장의 거래량 급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남길남 파생상품실장)

세수 감소의 배경이 되는 시장 축소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올해 옵션승수 상향과 옵셩매수전용계좌 폐지 등 파생상품시장 건전화 방안 시행 이후 시장 환경을 반영한 것이라는데요. 분석대로라면 적어도 시장 규모가 지금보다 1/3정도 축소되는 겁니다.

특히 이날 토론회의 핵심은 거래세를 앞서 도입한 해외 실제사례 분석이었는데요. 현재 거래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만을 두고도 정치권과 업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세계적으로 파상생품 거래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대만이 유일합니다.

앞서 스웨덴은 1991년, 일본은 1999년 각각 거래세 제도를 이득세(소득세)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대만은 1998년 처음 거래세를 도입할 당시 0.05%였던 세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져 현재는 0.004%로 1/10 수준까지 낮춘 상태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거래세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세수 확보 비중이 기대에 못 미친데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 부작용이 드러났기 때문인데요. 이미 아시아 대표 선물로 꼽혔던 코스피200선물이 중국 CSI300선물에 유동성을 추월당한 상태에서 대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주장입니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파생상품 거래세 왜 악법인가”에 대한 업계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였습니다. 특히 ‘이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론도 대두됐는데요. 금융상품 투자란 누군가 수익을 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기 때문에 거래 자체에 세금을 매기는 것 보다 얻은 수익만큼 소득세를 물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중도적 제안도 상당한 공감을 얻었습니다.

어쨌든, 토론회 과정을 보며 지난해 ELW 특혜 사건 이후 정부 감독당국의 갖가지 해결책과 그 결과가 기시감처럼 지나가더군요.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한다며 거래비용 부담을 늘리는 등 진입장벽을 높인 결과 시장은 불과 1년 만에 1/10토막으로 줄었고 사실상 국내 ELW 시장은 멸종되다시피 했습니다.

일부 투기적 매매자들의 행태는 사라져야하지만 투기와 투자를 한 통속으로 보는 정치권의 근시안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