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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세관이 보는 커피향과 홍차향의 차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2.09.12 17:20:08

[프라임경제] 커피의 로스팅은 맛과 향이 어떤 개성을 갖게 되는가를 가르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홍차의 경우도 가향 홍차(예를 들어 베르가못 오일을 더한 얼그레이 홍차)의 블렌딩을 하기도 하는데요.

커피 로스팅과 홍차의 블렌딩은 세관에서 개념만으로 보면 상당히 다른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12일, 볶은 커피의 원산지는 원재료인 '커피 생두의 생산국'이 아니라 '로스팅 가공국'으로 봐야 한다는 행정심판 결정이 나왔습니다. 스리랑카산 원두를 이탈리아에서 로스팅한 경우 원산지가 어디냐의 갈등이 생긴 것인데요. 서울세관과 수입자가 갈등을 겪게 돼 행정심판을 받게 된 사안이었습니다.

행심위 설명에 따르면, 커피의 생두는 로스팅 가공을 거친 후 제품 분류번호가 바뀌고, 로스팅 가공은 커피 생두에 맛과 향을 가미하여 실질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볶은 커피 고유의 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라 로스팅한 나라를 원산지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차에 대해서는 '찻잎 생산국'이 중요할 뿐이지, '블렌딩 가공국'은 원산지로 볼 게 아니라고 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차 제품의) 블렌딩 가공은 완성된 홍차에 맛과 향을 더하는 단순혼합에 불과하다"며 찻잎의 고향이 원산지라는 설명입니다.

얼핏 보면 왜 독특한 맛을 부여하는 로스팅과 블렌딩은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저렇게 달리 보는 것일까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궁색해 보이는데요.

이는 관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관세율표 문제 때문입니다. 관세를 매길 항목이 굉장히 많고 세율이 걸려 어떻게 분류를 쪼개는가에 따라 첨예한 이해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관세율표를 만드는 것은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관세율표의 항목별로는 고유번호를 주게 되는데, 1988년 국제협약으로 채택된 국제 통일 상품 분류 체계(Harmonized Commoditi Descriptin and Coding System)가 있고 이 HS에 따라 붙는 항목별 분류숫자가 HS코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의 행정심판을 보면 로스팅에 대해 길게 중요성을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사실 로스팅을 하고 나면 코드가 바뀐다는 설명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저러하다고 이유는 붙였지만, 역시 이것도 코드 문제인 것입니다.

관세청은 세계 HS 정보 시스템을 공개, 제공하고 있는데요.

   
커피의 경우 볶았는지의 여부에 따라 다른 HS코드가 부여된다. 볶으면 '다른 상품'으로 각국의 관세 당국은 보는 것으로 굳어져 있는 셈이다.
   
한편 차의 경우 커피와 달리, 가향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가향 여부 불문이라고 뭉뚱그리고 있으니, 가향 블렌딩 과정을 한 나라를 원산지로 표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아예 논의의 필요성 자체가 없는 셈이다.

여기 관세율표상의 개념을 얼마나 세분하는지, 또 어떤 코드를 주는지의 정도에 따라 갈라지는 것입니다. 대단히 논리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분류 여부에 따라서라는 싱거운 문제인 것이지요. 오래 전부터 커피는 생두냐 로스팅된 원두냐 가르는 걸 각국이 관세 판단에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홍차는 향을 더하는 처리를 하고 말고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던 차이 때문입니다. 기준 자체에서 차는 가향 여부 불문이라고 묶어 놨고, 다른 나라도 다들 그렇게 하는데 우리나라만 논리적으로 커피 로스팅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논쟁을 벌일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딸기는 채소일까요, 과일일까요? 난센스 퀴즈냐구요? 아니오, 상식적으로야 딸기는 토마토와 같은 채소로 봐야겠지요. 하지만 관세 문제에서는 과일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과거 채소와 과일의 수입관세율 처리를 할 때 딸기는 예외적으로 과일로 분류한 흔적이 여태 세계 무역 기준에 남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날 HS 코드를 매기는 기준에서도 딸기는 과일쪽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습니다.

   
딸기는 채소다. 하지만 무역 문제에 있어서는 과일쪽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있다. 이는 HS 코드표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니, 행심위가 말은 여러 가지로 고심해서 내놨지만, 냉정히 따지면 "그냥 원래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벗어나는 관세 처리를 할 수는 없잖아?"라는 게 바탕에 깔린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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