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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폐기물과 식품·사료 사이의 세법학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2.07.17 14:04:48

[프라임경제] 젓갈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반갑잖은 소식입니다. 그간 미국에서 수입되던 냉동 명태 내장이 관세 품목분류에서 어류 폐기물(waste)에서 냉동 어류로 변경돼 관세율이 상향된다고 합니다.

관세청이 최근 관세품목분류위원회에서 냉동 명태 내장 외 7건의 품목 분류를 결정했다고 밝혔는데, 세계관세기구(WCO)의 HS해설서가 개정됨에 따라 냉동 명태 내장을 어류 폐기물(제0511호)에서 그냥 해당 어류로 분류하게 돼, 제0303.67호로 넣기로 했답니다.

이 경우 세금에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어류 폐기물은 관세율 5%가 적용되지만, 이번재분류 결정으로 하면 관세율이 10%로 높아지게 됩니다.

젓갈을 담가 먹는 원자재를 그간 폐기물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왔다니 또 이 참에 세금까지 더 붙게 생겼다고 하니 기분이 좀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선 내장을 요모조모 활용해 먹는 아시아인들의 식습관이 관세 분야의 국제 공조에도 반영돼 당당히 식품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 아니냐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그런가 하면, 그 반대로 먹을 것에서 어느덧 폐기물로 ‘급전직하’하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운 아이템도 있습니다. 대두박(大豆粕)이 바로 그것인데요.

   
대두박은 오늘날에도 탈지대두나 탈지대두분 등의 형태로 가공식품 제조에 사용되지만 두부에 직접 혼합되는 등 혼합재료 용도로 사용되는 일은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료용으로 많이 쓰이는 추세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내용과 직접적 연관은 없음.
흔히 쓰는 글자가 아니라 낯선 분도 있을 텐데요. 저 박은 지게미를 나타내는 글자인데, 간단히 이야기하면 대두박은 둥근 대두를 압편해(눌러) 대두유를 추출하고 남은 것입니다. 이를 탈지대두박이라 하고 이것을 분쇄한 것이 탈지대두분이지요(네이버 사전 참조).

마찬가지로 미강유(쌀겨기름)처럼 뭔가 남은 부산물에서 물건을 얻어낸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겨나 지게미(찌꺼기) 등의 표현을 가급적 하지 않고 일본에서 쓰는 그대로 한자어를 빌려왔던 게 아니냐는 설이 있습니다. 올리브 포머스(Pomace) 기름의 포머스도 저 박에 해당합니다. 역시 일단 한 번 기름을 짠 찌꺼기를 갖고 헥산이라는 용제를 이용해 한 번 더 짜낸 ‘B급 기름’이지요. 

대두박은 그간 이렇게 모호한 한자 뒤에 숨어 왔는데, 탈지대두분, 탈지대두 등의 이름으로 현재도 가공식품 곳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와 100% 같은 공정으로 전통식 간장, 된장을 담가 팔아서는 수요 물량을 댈 수 없으니까요(이들은 한식된장 등의 표현으로 따로 표기함).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언론에 요리전문가가 나서서 “콩깻묵(대두박도 아니라 적나라하게 콩깻묵이라는 표현을 사용)을 섞은 두부가 오히려 콩으로만 만든 두부보다 단백질 함량면에서 더 우수하다(1975년 7월25일 매일경제신문)”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꼭 일제시대에만 콩깻묵을 먹고 산 게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먹을 게 궁한 세월이 아니라 한참 세월이 흐른 1990년 연말에도, 비용 문제로 대두박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연합통신(오늘날의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면 국내 생산 콩의 주요 소비처인 두부 및 장류, 두유업계가 대두박 수입자유화에 따라 ‘식용 대두박의 필요량 전부를 수입으로 충당할 움직임’마저 보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아무래도 콩 100%를 강조하는 등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대두박은 전면에 나설 일은 점차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가공식품류 중 일부에 재가공된 형태로 등장하고, 사료용으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료용으로 쓰이는 대두박에 대해, 폐기물관리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돼 사료를 쓰는 축산농들을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다는 것인데요. 널리 퍼진 인식대로 ‘사료용 대두박=폐기물’ 공식이 성립하는지를 환경부 관계자에게 문의해 봤습니다. 관계자 설명으로는 “일단 해당국에서 폐기물로 발생됐다면 국내에 들여와 재활용을 한다 해도 (일단) 규율 대상은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원칙은 이렇지만 “단미사료 기준에 충족되고 그 (용도로) 수입한다고 하면 (폐기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사료관리법 규정에 따라 수입하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 그리고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사료용으로서는 물론 식용으로서도 대두박은 여전히 ‘현역’입니다. 관세청 측에 의뢰해 농림수산부 산하의 전문기관인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 대두박 검역 문제를 문의해 보니, “식용과 사료용을 가리지 않고 검역을 받으면 통관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생선의 내장이 waste냐 생선 그 자체냐가 어느 날 결정 하나로 왔다갔다 오가듯, 대두박에 대한 평가 역시 식품과 사료감, 폐기물 사이의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나 봅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식문화 다양성 인정 여부 같은 고담준론이 아니라 그야말로 먹고 사는 형편이 펴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것 같아 흥미를 돋우는 한편 찡한 기분을 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참고로 사료용 대두박의 2012년 관세는 할당 관세 조정 처리로 당초 1.8에서 0으로 변경 적용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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