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오후 2시로 예정된 공청회가 30분이 지나도록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2일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열린 ‘진입규제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 현장.
산재노동자 대표가 공청회가 시작되는 것을 저지하며 “내가 물어본 거 답부터 하고 시작하라”고 호통을 친다. 그가 물어본 질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산재보험 대상자, 즉 산재노동자의 10%가 가짜환자라는 것인가”였다.
이어 산재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이 공청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논의되는지 지켜봐야겠다”며 줄줄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화상, 골절 등으로 팔·다리 부상을 입거나, 휠체어 신세를 진 노동자들이었다.
공청회 진행이 원활하지 않자 관람석에 있던 참석자들의 얼굴이 불만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산재노동자들을 향해 큰 소리 치는 이들은 없었다. 몸이 불편한 산재노동자들을 상대로 보란 듯이 싫은 내색하기가 뭐했던 모양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오죽하면 여기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왔을까’ 하는 심정들로 보였다.
산재노동자들의 호통은 40분 넘게 계속됐다. 하지만 공청회를 주관하는 KDI 측은 우왕좌왕 할 뿐 별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공청회 참석이 예정돼 있었던 패널들 중 몇몇은 방명록에 이름만 남긴 채 돌아 가버렸다. 어떤 이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까지 치기도 했다.
기자는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한 산재노동자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산재노동자협회 한 간부는 “다리 잘려 수술하는 것만 치료냐, 계속 병원 다니면서 상처치료하고 향후 경과 보면서 치료하는 건데, 그게 나이롱환자냐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들이 책상에 앉아서 말만 떠들고 있다”며 “멀쩡한 자기들은 예방이랍시고 치료받고 자기건강관리하면서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 50~60%가 앉아만 있으니 욕창으로 썩어 들어가는데 이거 방지하려고 20만원 넘는 비싼 방석 사서 깔아야하는 심정은 하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산재노동자협회가 공청회에 참석한 이유는 분명하다. 민영보험사의 경우 보험사기 방지를 위해 적발인지시스템과 적발조직(SIU)를 두고 있는데, 산재보험이 민영화될 경우 보험금 수령 조건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산재보험환자에 대한 혜택 축소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는 결국 무산됐고, 관객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2부 서울보증보험 공청회에는 더 많은 인원이 KDI회의실을 찾았다. 서울보증보험과 경쟁할 수 있도록 손보사들을 위해 진입규제를 낮춰야 한다는 게 주제였다.
‘보증보험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입장과 ‘손보사들과의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공청회 자리였다.
1부 때와 마찬가지로 공청회 시작 전부터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참석자로부터 정부를 비난하는 격분이 터져나왔다.
“몇 년 전부터 같은 거 가지고 까먹을 만하면 한 번씩 (공개토론회를) 열고 있는데, 이러다가 MB정부 하는 식 있잖아요. 갑자기 밀어붙이기 식. 그렇게 이야기(논의)도 없이 민영화 될까 걱정이요.”
보험업계가 오랫동안 주목해오던 사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토론회 현장은 썰렁했다. 참석한 기자 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미 오랫동안 논의돼 오긴 했지만 이미 몇 차례 같은 내용으로 별 영양가 없는 공청회가 열렸던 터라 이런 자리를 식상하게 여기는 기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설비공사의 한 간부는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이미 전에 나왔던 보고서를 약간 각색했을 뿐인데…, 나동민(원장) 씨가 쓴 거 그대로 베낄 거면 그 돈 나 주소. 내가 할 게. 매번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말 할 거면서 이렇게 공청회만 여는 겁니까.”
공청회를 위해 마련된 보고서는 “전문가가 만들었다는데 내용까지 틀렸다”는 지적까지 받으며 괄시 당했다.
서울보증보험의 한 관계자는 보험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사업별 규제 등의 차이를 반영한 수치가 아닌 일반화된 수치로 작성했기 때문에 HHI(허핀달-허쉬만 지수·Herfindahl-Hirschman Index)지수가 ‘독점’으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연구원은 보고서에서 0.3의 HHI지수를 산출했는데, 이는 ‘독점’을 나타내는 수치다. HHI의 값이 클수록 산업의 집중도, 즉 ‘독점’에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서울보증보험 주장에 따르면, 지수가 0.17로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0.3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계산은 잘 못된 것이고, 당연히 보고서도 신뢰하기 어렵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보험연구원의 전문연구위원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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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토론을 하는 공청회 자리였다. 공개토론을 열고 좀 더 나은 방안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열린 자리였지만 원활하지 못한 진행, 같은 내용의 보고서, 정책자들 위주의 토론 등의 문제가 수차례 지적된 이 자리는 ‘반쪽자리 공청회’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하나마나해 보이는 공청회가 왜 이토록 얼렁뚱땅 반복되는 것인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프라임경제/조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