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께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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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60년대부터 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목포상고를 졸업했다. 그 뒤 목포일보 사장을 역임하고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80년에는 5월 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끈 뒤 87년 6월 민주화가 이뤄지는데 큰 공헌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87년·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연거푸 낙마를 하다가 95년 국민의호를 창당해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접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97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최고의 정보화사회를 구현했으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며 화해와 화합이 중심이 된 대북 햇볕정책을 이끌었다.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와 같이 전직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장이나 국민장으로 거행될 수 있다고 행정안전부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