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파업도 휴가로 재충전해 가면서 하는 시대? 19년 연속 파업으로 눈길을 끌었던 기아차 노조가 이번에는 휴가를 다녀온 다음 다시 파업을 재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아차에 따르면 이 회사 노조는 오는 31일까지 매일 주야간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3700억원 손실에도 휴가 후 다시 부분파업
노조는 사측과 교섭 일정이 정해지면 응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상황에 따라 파업시간 등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방침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파업이 아닌 8시간 전면파업으로 치닫는 경우도 가정해 볼 수 있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 5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이미 임금협상을 벌여 왔다. 하지만 15회 이상 임금협상을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댔지만, 주요 쟁점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5.5% 인상, 생계비 부족분 200% 이상 지급, 주간연속 2교대제(8시간+8시간)와 월급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을 동결하되 생계비 부족분 200%와 격려금 250만원을 지급하고, ‘8+9 방식’의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는 선에서 임금협상 마무리를 원하고 있다.
하계휴가를 실시하기 전까지, 기아차는 이미 노조의 부분 및 전일 파업으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어 왔다. 기아차는 지난달 27일까지 2만1000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금액으로는 3700억원에 달한다. 이제 다시 파업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게 기아차의 고민이다.
이같은 파업손실 증가는 기아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협력업체들 역시 이번 파업 재개 선언으로 인해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기아차의 파업으로 이미 260여 협력업체들은 2007년 300억원, 2008년 200억원대의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이번 파업 손실까지 겹치면 협력업체들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휴가는 알차게 챙기자?
기아차 노조의 이같은 행보는 휴가가 끝난지 이틀만에 파업 재개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얌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측이 협상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는 데 파업 재개 명분을 두고 있지만, 하계 휴가를 모두 쓰기 위해 파업을 멈췄다가 불과 얼마 후 파업 재개라는 카드를 다시 꺼낸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기아차는 지난 해에도 봄부터 가을까지 협상 줄다리기를 한 바 있다. 결국 장기적인 힘겨루기 속에서 파업 중 휴가라는 웃지 못할 풍경을 만드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휴가는커녕 기업의 존폐를 장담하기 어려운 게 제조업 전반의 풍경인데, 기아차 노조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파업은 ‘역시 대기업 귀족 노조’라는 비판대상이 되는 것. 하다못해 기아차에 부품을 대는 협력업체들의 직원들도 파업 여파로 월급을 제대로 받을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는 휴가까지 알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극명한 대조 상황을 빚고 있다.
◆흑자면 흑자나는 대로 적자면 적자인대로 파업?
더욱이 이번 파업 재개는 실적 호조 상황과 주문이 밀린 현실을 악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12일 나온 기아차 실적발표에 따르면 기아차의 상반기 매출액이 8조1788억원으로 전넌동기대비 3.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03억원으로 전년대비 91.5% 증가했으며 당기순이익은 3833억원으로 무려 672.2%나 올랐다.
2분기 실적도 매출 4조6764억원, 영업익 3303억원으로 지난 2004년 4분기 이후 최대 실적이다. 이는 당초 시장 컨센서스인 매출 4조3000억원, 영업익 1600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같은 실적은 기아차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외부적 요인과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기아차 일각에서도 이번 어닝 서프라이즈를 마냥 즐거워하지만은 못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실적 상승이 불안정한 세계 자동차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환율 상승효과와 세제지원 등에 힘입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형적 성과만을 놓고 파이 분배를 외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게 기아차 노조의 파업 재개에 쏠리는 비판이다. 더욱이 특소세 특수로 밀려있는 주문을 인질 비슷하게 파업 정국에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더욱이 기아차 노조는 연속 적자 상황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파업을 계속해 와 실적이 좋아졌다고 해서 바로 파업을 하는 것이 명분히 희박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기아차는 2006년 1253억원, 2007년 554억원의 연속 영업적자를 냈지만 2008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겪었다.
◆손발 안 맞는 노사, 기아비전 2010 흐지부지 상황 재연?
이처럼 기아차와 기아차 노조가 서로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기아차의 발전 원동력을 깎아먹는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아차를 핵심 카메이커로 만들 것으로 기대됐던 차세대 아이디어 ‘기아비전 2010’이 사실상 노사 갈등으로 흐지부지됐던 악몽을 이번 휴가 후 파업 재개에 겹쳐보고 있다.
기아비전 2010은 디자인 경영, 희망 일터 조성, 판매 역량 강화 등을 주축으로 해 GM대우 등 경쟁업체를 긴장시켰지만, 결국 노사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2007년 연말, 노조측이 사측의 무성의로 기아비전이 폐기됐다고 선언하고, 사측에서는 또다른 입장을 피력하는 등 공방전으로 비화되며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결국 회사 경쟁력을 강화할 비전과 역량을 강화하는 일보다는 임금 인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만 노사간 관계의 전부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조측이 파업 만능 사고관을 지양하고 빠른 협상 매듭을 고민해야 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