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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는 외갓집 재산을 상속받고 제사도 지냈다?

조세박물관, 조선시대 땅 상속·증여·매매 보여주는 '땅, 나눔과 소유'특별기획전 13일부터 1년간 개최

정운석 기자 기자  2009.08.11 19: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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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이씨분재기(1548년, 강원유형문화재 제9호)에 따르면 신사임당 어머니 용인이씨는 다섯 딸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누고, 특별히 외손자 현룡(율곡의 유년시절 이름, 11세때 이로 개명)에게 서울 수진방(현재 수송동과 청진동) 기와집과 노비·전답을 주며 신씨집안의 제사를 지내게 하고 또 다른 외손자 권처균에게는 강릉의 오죽헌과 노비·전답을 주며 성묘를 담당하게 했다.

조선중기 인조반정의 공신인 이귀(1557년~1633년)가 사망하자 장자 이시백, 2남 이시담 등 9남매가 재산분배를 위하여 작성한 이시백남매 화회문기(1636년)에 따르면, 각종 제사와 묘를 관리하기 위한 재산을 먼저 떼고 남녀형제에게 재산을 고루 나누고 서자에게는 정실 자녀의 절반에 해당하는 재산을 분배했다.

국세청 조세박물관은 개관 7주년을 맞아 조선시대 땅과 관련된 사회제도(조세제도 포함)와 관습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땅, 나눔과 소유' 특별기획전을 13일부터 1년간 개최한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재산의 분배를 기록한 분재기, 토지매매문서인 토지매매명문 등여러 고문서를 통해 조선시대 땅에 대한 상속·증여·매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 경국대전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아들·딸(출가한 딸 포함)에게도 차별 없이 재산을 균등 배분한 사례 및 재산에 얽힌 소송이야기 등 당시 땅에 관한 다양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기획전의 주요 전시물은 인조 때 공신인 이귀 집안의 분재기로서 부모 사후 재산을 협의하여 나눈 화회문기 및 과거합격 등 집안경사에 재산을 사전 증여하는 별급문기를 포함하여, 신사임당의 어머니(용인 이씨)가 작성한 이씨분재기, 율곡이이의 남매가 작성한 분재기, 그 밖에 전세의 면제를기록한 면세성책, 전답안 등이 있다.

▲손자의 과거합격을 기뻐하는 할아버지의 별급문기(이시담의 별급문기 1657년, 1663년)

조선중기 인조반정의 공신인 이귀의 2남 이시담(1584년~1665년)이 둘째 손자와 장손이 과거에 합격하자 노비와 전답을 선물로 준 문건으로 당시의 영의정을 역임했던 이시백(친형)과 익산군수 등이 증인으로 참여했다.

▲율곡이이의 토지양여서(1579년,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0호)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진 율곡이이의 친필문서로서 율곡이 외조모인 용인이씨로 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이종사촌인 권처균에게 매도한다는 내용의 토지매매명문이다.


▲율곡이이 남매들은 부친 사후 차별 없이 재산분배를 하였다?(율곡선생남매분기, 1566년)

율곡이이의 부친 사후 남매들이 모여 작성한 화회문기로 경국대전 형전의 규정에 의하여 남녀 차별 없이 균분하게 상속하였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조선 중기이후에는 딸이 소외되고 장자가 우대 받는 상속제도로 변화됐다.

▲조선시대 토지매매계약서(양반체면 때문에 노비이름으로 거래하고 세금 대신 밭으로도 상납)

노비 금쇠 토지매매명문(1847년); 이생원댁 노비 금쇠가 백생원댁 노비 휼덕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조선시대 양반은 거래행위에 직접 나서는 것을 꺼려하여 전답의 매매, 소송의 진행, 청원서 제출까지 노비가 대행함을 알 수 있는 자료다.

박원 토지상납명문(1829년); 박원이란 자가 친척 박서옥의 군포(병역을 면제해 주는 대신 받아들이던 베) 납부의무를 대신 부담하게 되자, 군포 대신 밭을 상납하며 영구히 징포시기에 납부를 강요하지 말라고 기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매와 상속에 따른 세금이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는 땅의 상속 및 매매에 대한 세금은 없었으며 소유한 땅에 대한 세금, 즉 전세만 있었다. 조선시대의 전세제도는 과전법, 공법, 영정법으로 계속 변화하였고, 숙종 대 후반 이후 비총제, 19세기에 도결이라는 방식으로 전세를 징수했다. 

상속세의 유래; 우리나라 상속세는 유산세체계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6월 훈령 제19호로 조선상속세령이 공시되어 창설되었고,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은 미군정기인 1948년 4월부터 과세했다.

▲조선시대에도 세무조사가 있었다?

석천원전결원장부(조세박물관소장); 석천이라는 지역의 전답 소재지·면적·소작인 등 내역을 적은 토지대장으로, 납부할 세금을 계산한 장부인 깃기가 붙어 있다. 조선시대 세금의 부과·징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짓기(1889년, 조세박물관소장); 수세를 담당하는 서원(書員)이 사람별로 소유한 토지를 모두 취합하여 납부할 세금을 계산한 장부다.

화재후수정소야촌파랑전답안(1776년, 조세박물관소장); 소야촌 파랑동(현재 충북 단양군 적성면) 지역이 화재로 큰 손실을 입자 토지를 다시 조사하여 작성한 전답안이다.

면천군면세진기성책(1824년, 조세박물관소장); 면천군(현재 충남 당진군 면천면) 소재 전답에 대한 면세장부로서 토지대장에는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는 토지를 확인하여 전세의 면제를 기록한 대장이다.

▲조선시대 세무조사는 양전?

농토의 면적과 작황을 조사하는 것을 양전이라 하며, 이를 토대로 양안을 작성하고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을 조라 한다. 조세라는 말은 벼로 세금을 납부함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법제적으로 20년마다 한번 씩 전국적인 규모로 양전을 실시하도록 하였으나, 실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여 수십 년 또는 100년이 지난 후에 개별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