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한진-아람코간 견제 경영환경 정착

[50대기업 대해부] 에쓰오일② 우여곡절 지분구도

이철현 기자 기자  2009.08.11 11:09:3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국내 정유업계를 이끌고 있는 에쓰오일의 현재 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로 35.12%의 지분을 갖고 있다. 2대주주 한진에너지는 28.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상반기 매출 7조8521억원, 영업익 4408억원, 순이익 2388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1975년 쌍용양회와 이란 국영석유회사가 50대 50의 지분을 출자해 합작 설립된 뒤 1984년 이란 석유회사 측의 철수로 쌍용이 이를 인수했다. 이후 1991년 사우디 아람코 자본을 유치, 다시 합작사가 됐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쌍용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보유지분 28%를 에쓰오일 측에 자사주 형태 등으로 넘기면서 결국 아람코 체제가 됐다.

하지만 사우디 아람코는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후에도 한 동안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주주 측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에쓰오일 경영진이 철저히 주주우선 정책을 유지, 지난 1998년에서 2000년까지 연속 50% 배당에 이어 지난 2001년에는 75%에 달하는 고율배당을 잇따라 실시해 대주주에게 파격적인 배당 이익을 보장했다. 이로 인해 아람코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고배당을 챙길 수 있었다.

에쓰오일은 이 같은 고배당 정책과 함께 당시 정유업계에서는 선발업체인 SK에너지, GS칼텍스의 시장잠식을 위해 가격경쟁을 주도, 이들로부터 사실상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에쓰오일의 경영방식의 중심에는 김선동 회장이 있었다. 김 회장은 정유업계에서 공격적이고 독특한 경영스타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인물.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지난 1963년 옛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한 이후 40년가량 정유업계에 종사해 왔다. 1976년 쌍용정유의 전신인 한이석유회사로 옮겨 쌍용정유 창립멤버로 참여, 1991년에 대표이사에 승진했다.

◆‘아성’ 무너진 뒤 균형 잡아

이후 1999년에 사우디 아람코사를 설득, 쌍용정유를 쌍용그룹에서 떼어내 독립회사인 에쓰오일로 새 출발하게 했고 이후 사우디 아람코사의 신임아래 오너 같은 전문경영인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대주주인 아람코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지난 1991년부터 10년 넘게 에쓰오일의 경영에 오너에 못지않은 전권을 휘둘렀던 김 회장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아성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의 경영방식은 2002년 주가조작 및 회계부정 혐의로 구속기소된 후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며 사라지게 된다. 법원의 유죄판결 후 김 회장은 대주주에 대한 파격적인 배당이익을 마련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정유업계의 비난을 들으며 조용히 물러났다. 물론 이후 경영구도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지만 아람코의 무반응에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아람코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에쓰오일을 경영했던 김 회장. 이들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그 동안 에쓰오일은 타 정유업체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 회장의 고배당 정책으로 인해 에쓰오일은 타 정유업체의 연구개발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거액을 배당금을 아람코에게 바치기 바빴고 이후 그의 징역은 큰 혼란을 낳았다. 결국 이로 인해 에쓰오일은 한 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에쓰오일은 2007년 자사주 28% 정도를 한진그룹의 계열사 한진에너지에 양도했다. 이후 2008년 3월 아람코 근무경력 27년의 베테랑 알 수베이 대표이사가 취임, 에쓰오일 전문경영인으로 등극했다.

지금도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사우디 국영회사인 아람코사인 가운데 새로운 경영구도가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한편, 에쓰오일 이사회는 사우디 아람코 측 6명, 한진에너지 측 5명이지만 경영상에서 중요 의사결정은 3분의 2 이상의 이사회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견제가 가능한 구조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