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경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지난 4일 해남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조 씨의 아내 이 모 씨는 이날 오전 자택 현관에 쓰러져 있는 조 씨를 발견해 119 구급대에 신고, 해남종합병원으로 옮겼으나 1시간 후에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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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해협 횡단을 준비중이었던 故 조오련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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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련씨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호적상의 나이가 아닌 실제 나이로 환갑이 되는 그는 '환갑의 힘을 보여줘 국민에게 용기를 주겠다'며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기념해 다시 횡단에 도전하려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 훈련캠프를 차렸다.
하지만 1억여원의 훈련비와 진행비를 지원할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1주전에 해남 자택으로 돌아왔다.
조 씨는 스폰서 문제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재발해 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을 능가하는 원조 수영스타
1969년 전국체전 서울 예선전에 처음으로 출전해 400m,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아 1970년 방콕과 1974년 테헤렌 아시안 게임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내 '아시아의 물개'란 별명을 얻었다.
1978년 선수생활을 마감할 때 까지 한국 신기록을 50차례 경신했다. 또한 1980년 대한해협, 1982년엔 도버해협을 횡단해 주목을 받았다.
2001년 전 부인과 사별하면서 우울증을 앓았지만 수영을 통해 다시 일어선 그는 한강 600리를 헤엄쳐 건재함을 과시했다.
또한 2005년에는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 독도를 헤엄쳐 건넜고, 대한수영연맹 상임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4일 고인의 빈소로 이동하던 부인 이 씨가 남편의 사망소식에 충격, 음독자살을 기도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응급실에 옮겨 위세척을 마친 이 씨는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남경찰서는 유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 부검을 의뢰할 것”이라고 밝히고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5일 오전 국과수 장성분소에서 부검할 계획”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