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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에 위치한 에쓰오일 온산공장 전경.> | ||
에쓰오일은 지난 1976년 쌍용양회와 이란 국영 석유회사인 NIOC와의 합작으로 설립된 ‘한·이 석유주식회사’가 모태다. 이 시기 쌍용그룹의 창업주이기도 한 고 김성곤 전 회장의 장남 김석원 씨가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룹의 각종 계열사를 설립했거나 인수하는 등의 왕성한 의욕을 보일 때였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4학년 1학기만을 마친 채 그룹 경영을 위해 급히 귀국했다. 이후 당시 다섯 개에 불과하던 계열사를 90년대에는 국내 22개, 해외 21개로 늘렸다. 그룹 매출액도 60배로 성장시켜 국내 재벌 랭킹 6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특히 용평스키장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추진, 어느 계열사보다 애착을 갖기도 했다.
한·이석유 역시 1980년 쌍용에 인수, 사명을 쌍용정유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한다. 국내 최초의 수소첨가 개질공정에 의한 윤활기유 생산공장 착공, 윤활기유 설비 상업가동을 개시했던 쌍용정유. 이후 1991년부터 세계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해 아람코로부터의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바탕으로 국내외 석유시장에 안정적으로 석유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쌍용차와의 악연
하지만 이후 쌍용그룹이 부실의 늪에 빠지면서 쌍용정유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지난 1986년 동아자동차(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데서 비롯된 김석원 회장의 무리수가 바로 그것이다. 일부 임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석원 회장은 쌍용차 투자를 계속 감행했다. 결국 이는 천문학적인 부실로 이어졌다. 쌍용그룹은 이후 1998년 1월 쌍용차에서 손을 뗐지만 이때 쌍용양회는 쌍용차 보유주식을 처분하면서 858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또 쌍용양회를 포함한 계열사들은 무려 1조7665억원의 쌍용차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쌍용양회는 자산 재평가를 통해 장부상 자기자본을 5302억원이나 늘렸음에도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는 곧바로 계열사들의 매각으로 이어졌고 쌍용정유는 1999년 11월 쌍용정유의 최대 주주이기도한 아람코에 인수, 쌍용그룹으로부터 분리되며 또 한 번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2000년 3월 에쓰오일로 상호를 변경,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2007년 4월 세계적인 물류∙운송 그룹인 한진그룹에 자사주를 매각, 한진그룹을 국내의 전략적 파트너로 맞이했다. 1년 뒤인 2008년 3월에는 알 수베이 대표이사가 취임, 에쓰오일을 이끌고 있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성공적인 경제 협력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에쓰오일. 한진그룹과의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한-사우디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양국에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자사주 매각은 에쓰오일의 재정 유동성을 향상시켜 지속적인 장기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최첨단 BCC로 수익성 향상
에쓰오일 울산공장은 하루 58만배럴의 원유를 처리하여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원유정제시설과 석유화학제품 및 윤활제품 등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최고수준의 최첨단 고부가가치 BCC(bunker-c cracking center, 중질유분해탈황시설) 가동을 통해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벙커C유에서 경질유를 뽑아내는 에쓰오일의 BCC는 단순제조업으로만 인식되고 있던 국내 정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정유산업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내수산업으로 인식되던 국내 석유산업의 기존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해 가동 초기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한 결과, 수출과 내수의 조화를 통해 국내외 영업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에 따라 매년 생산물량의 50%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에는 총 매출액의 60%에 달하는 약98억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