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열정적 라이브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가수가 있다. 그 주인공은 ‘뜨거운 안녕’과 ‘사노라면’으로 60년대를 화려하게 풍미했던 쟈니 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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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리의 50년 노래인생이 그렇듯 70대가 되어서도 풍부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가창력이 팬들을 압도 한다. 사람의 목소리 역시 훌륭한 악기라고 하면 쟈니리의 목소리는 흐느끼는 색소폰 소리에 비유 할수 있겠다.
신곡 ‘걱정마’는 경쾌한 느낌의 록과 재즈를 잘 접목시킨 곡으로, 쟈니리 특유의 멋스러운 보이스와 잘 어울려져 여러모로 힘든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는 곡이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 된다. 노래의 가사와 같이 누구나 걱정거리는 다있으니 이노래를 듣고 다시 희망적인 생각을 갖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래서 쟈니리는 거짓의 메시지를 던질수 없기에 항상 라이브로 팬들을 만나고 있다고 전한다.
본명 이영길.
만주 길림성에서 출생, 어릴 때부터 평탄하지 못했던 가정사로 인해, 1938년에 태어났지만 4년 후인 194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호적에 이름이 올려짐.
어린 시절의 쟈니리는 중국 길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진남포에 있는 외삼촌 집에 맡겨지게 됨.
진남포 풍전 인민소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 전쟁이 터지자 쟈니리는 1951년, 1ㆍ4 후퇴 피난민들을 따라 홀로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옴.
부산 피난민수용소에서 지내던 소년 이영길은 덴마크 출신 미국인을 만나 양아들로 입적됨. 당시 부산의 항만 책임자로 있으면서 음악을 사랑했던 양아버지는 어린 쟈니리에게 외국노래와 영어를 가르쳐줌. 이때 양아버지가 그에게 새롭게 지어준 이름이 바로 '쟈니리'. 이때 배운 영어와 노래들이 이후 연예 활동하는데 큰 도움으로 작용.
1952년에 양아버지를 따라서 미국으로 잠시 건너갔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온 쟈니리는 1958년, 연예인이 되고자 상경.
당시에는 극장 쇼가 활발하던 시기. 당시 서울 스카라 극장 앞은 쇼 연예 단장들과 무명 가수들의 집합소, 이곳에서 쟈니리는 쇼 단체 ‘쇼 보트’의 단원으로 발탁되고 연예활동을 시작하게 됨.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상경한 뒤 극장쇼에 서게 된 쟈니리, 1961년, 그가 소속된 ‘쇼 보트’가 미8군 무대로 진출하면서 쟈니리는 미8군 무대 가수로 활동을 시작.
특히 영어가 능숙했던 쟈니리는 가수로써 뿐 아니라 사회자로 무대에 나서기도.
본격적인 음반 취입은 66년부터. 첫 취입곡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테마 음악인 '방랑의 휘파람'을 번안한 곡, ‘방랑의 휘파람’.
아울러 쟈니리는 이 곡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신세기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 '뜨거운 안녕', ‘예이예이예이’ 을 비롯, 제3지대, 내일은 해가 뜬다 등을 발표. 그 해 아리랑잡지 독수리상, 동아방송, 각종 주간지의 가요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
특히 잘생긴 외모와 타고난 가창력, 그리고 멋진 스테이지 매너로 단번에 청춘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하며 청춘영화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도 진출.
이 때 캐스팅된 영화가 대학생 보컬그룹의 성공기를 그린 청춘물, '청춘대학'에서 주연으로 발탁, 처음 이 영화 제목은 '비틀즈 한국에 오다'였다가 개봉 무렵 ‘청춘대학’으로 제목을 바꾸어 개봉. 이 영화에는 당대의 청춘스타들인 남석훈, 유주용, 트위스트 김과 함께 한국의 4인조 그룹사운드팀을 결성해 활동하는 역을 맡아서 열연.
67년 이후에도 작곡가 김영광과 손을 잡고 독집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4년, 미국 LA로 건너감.
도미 후, LA를 거쳐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주로 생활하던 쟈니리는 74년에 잠시 귀국, 작곡가 박춘석씨의 권유로 독집음반 ‘어느 날’을 발표. 이 때 사용한 예명은 이훈.
이 음반을 발표한 뒤 1980년대 초에 다시 하와이로 건너가서 라이브 바를 운영하면서 그 곳에서 20년간 체류.
20년만에 다시 귀국, 98년에 현재 부인을 만나 안정감을 찾는 듯했지만 식도암 수술을 하며 힘든 고비를 맞기도. 그러나 특히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으로 완치되고, 다시 활발한 활동을 재개.
현재 서울 논현동에서 라이브카페를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