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취임 6년째로 접어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오는 11일은 지난해 고 박왕자 씨 금강산 피살사건이 발생한지 꼭 1년째가 되는 날. 지난 3월30일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가 북측으로부터 억류된 지는 7월7일로 꼭 100일째다. 피살사건 이후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사실상 전면 중단 상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현정은 회장은 그럼에도 “포기는 없다”고 강조한다.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을 것 같은 현 회장이 ‘위기극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노림수와 한계를 진단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악화 일로로 접어든 남북관계와 좀처럼 돌파구가 안 보이는 대북사업으로 회장 취임 6년째에 접어든 지금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현 회장은 특유의 감성경영과 인내심으로 난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재계 안팎의 시각과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대북사업 재개, 대안 있나?
현대그룹으로서는 대북사업 표류 장기화에 따른 사업 중단으로 막대한 매출 손실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유무형 손실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게 더 큰 악재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 정치적으로도 남북관계 개선에 커다란 기여를 해왔던 현대그룹은 이미 금강산 관광 외에도 개성관광과 백두산 관광 등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순항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선회 후 남북 당국의 기싸움 속에서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상황으로 바뀌었고, 사업재개만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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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사업 딜레마에 빠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
현 회장도 최근 “대북사업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천명하며 의지를 보였지만, 슬로건만 있을 뿐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일단 현 회장의 뚝심을 믿어보자는 분위기지만 대북사업이 차질로 인한 또 다른 악재들이 기다리고 있어 낙관적인 전망을 갖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현대건설 인수 ‘일장춘몽’?
지난해 3월20일 고 정주영 회장의 '7주기 기일'을 맞아 현대가 며느리로서 고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은 현 회장은 “현대건설은 꼭 인수하고 싶다”며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현대건설 인수는 대북사업과 함께 현 회장과 현대그룹에게 최우선 사업 중 하나다. 현대아산이 대북 사업의 정통성을 띄고 있다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맨손으로 일군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뼈대라 할 수 있다.
고 정몽헌 회장이 물려받았던 현대건설은 지난 2001년 경영난으로 채권단에 넘어간 바 있다.
당시 현대건설은 2조9000억원의 적자를 낸 상황이었고, 부채는 4조4000억원이에 달했다. 그러나 2006년 가까스로 정상화가 된 뒤 지금은 옛 현대건설의 명성을 회복하며 알짜배기 기업으로 탈바꿈한 상황이다.
현대그룹으로서는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사업 다각화와 경영권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성공시키는 데에는 여러 걸림돌이 많다.
주력사업 중 하나였던 대북사업이 중단되며 유동성 악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출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현재 5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현대건설 인수가격에 다른 경쟁자들과 맞서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에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는 오래 전부터 의욕적으로 계획했던 부분이고, 그룹 전체 매출에서 현대아산이 차지 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인수전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수 최대 라이벌이 시동생이자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라는 점도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지난 2006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현대그룹 경영권을 노렸던 기억이 현 회장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며 현대건설이 매물로 나올 경우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제 현대중공업과 인수전서 맞붙게 된다면 현대그룹은 결코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
정치적인 관계를 살펴봐도 현대건설의 채권단이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이라는 점은 정부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며, 정몽준 의원이 여당 중진으로 정치 실세라는 부분도 현대그룹으로서 반가운 사실은 아니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우호지분 변동과 함께 현대그룹의 경영권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이미 여러 차례 제기돼 또 다른 악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며 순항을 탔다면 향후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여력은 물론 실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인수후보에 오르기 조차 힘든 상황이지 않느냐”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북사업의 경우 언제든 변수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현대그룹이 이를 대비한 사업다각화나 준비태세에 너무 소홀한 채 정부로부터 보호받아 왔던 한 통로에만 너무 연연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후계구도 변수될 수도
한편, 현대그룹의 경영진은 현정은 회장의 친정 체제로 완전 재편된 상황이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현대그룹 계열사 사장단은 모두 현정은 회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친정체제로 개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향후 후계구도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외아들인 정영선 씨(24)는 공익근무를 마치고 미국 유학 준비 중에 있으며, 장녀 지이 씨(32)는 현대유엔아이 전무에 재직 중이다. 차녀인 영이 씨(25)는 펜실베이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 회장이 아직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고, 자녀들이 아직 어리다는 점, 현재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자녀는 정지이 씨가 유일하기 때문에 아직 후계구도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최근 현 회장과 정 전무가 현대택배의 지분 되찾기에 나서며 경영권 승계가 서서히 가동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정 전무가 어머니 현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만 외아들 영선 씨도 최근 현대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현대투자네트워크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를 시작했다.
현재 유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영선 씨가 공부를 끝마치고 복귀할 경우 되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누나 정지이 전무와 함께 남매경영의 구도를 이루게 될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대북사업 중단으로 인해 계획됐던 사업다각화마저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이 장기화될 전망 속에 원활한 경영승계 작업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또한 친정체제로 그룹을 재편하는데 성공은 했지만, 대북사업 같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 결부된 사업을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정지이 전무나 경험이 미숙한 영선 씨가 현 회장과 같이 뚝심과 인내로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올스톱’이 되어 버린 대북사업이 지난 1999년 현대아산 창립 이후 올해로 11주년을 맞았다. 산적해 있는 악재들 앞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현정은 회장의 뚝심과 인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