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7일 규제개혁위원회가 ‘실손보장 축소’와 관련한 방안의 시행일을 연기토록 했다. 지난달 22일 금융위원회의 ‘개인의료보험제도 개선 방안’ 발표가 강행 처리된 데 대해 손해보험노조 측이 집회 등을 통해 강하게 반발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원회는 금융위원회가 결정한 실손보장률을 전액에서 90%로 축소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감독 규정의 시행일을 2~4주 연기토록 했다.
지난 6월22일 금융위원회는 ‘개인의료보험제도 개선 방안’ 발표를 통해, 최소한의 본인부담금을 설정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악화 우려,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 악화 등을 이유로 선제적인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손해보험상품인 ‘100% 보장형 실손 보험’이 병·의원 등 의료기관 이용 시,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를 전액 보장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진료행위가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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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지난 8일 여의도 공원에서 손해보험 노조가 '실손보험 축소반대' 집회를 열었다> | ||
이 법안에 대해 전국손해보험노동조합(이하 손보 노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 8일 ‘실손 보험 보장축소 반대’를 외치며 국회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한편 이날 오전, 삼성생명 측은 일부 기자에게 손보 노조 집회에 대한 보도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져 이 법안을 놓고 손보업계와 생보업계의 첨예하게 상반된 입장을 방증해주고 있다.이날 열린 집회에서 그린손보 안병현 수석부위원은 “금융위는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손해보험사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물증은 없지만 금융위가 생보사의 로비를 받고 손보사들과 상의 없이 강행하는 법안으로 추정된다”라고 반발했다.
◆소비자 선택권 제한, ‘부정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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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김광수 국장 > | ||
금융위원회 제종옥 사무관은 “실손보장을 전액으로 보장할 경우 모럴헤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 유발로 의료진료 과다로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까지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손해보험사 노조 측은 보험 가입자가 상해 시, △병원 진료비를 전액을 보장받고 보험료를 더 내는 것 △병원 진료비 90% 보장받고 보험료를 덜 내는 것 중에서 소비자가 선택은 자유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손해보험사는 실손 보장을 100%, 생명보험사는 80% 보장하고 있어 보험 가입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인데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서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까진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할 우려’를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주장하는 ‘실손보장 축소’에 동의하지 않았다.
◆졸속 추진 논란
‘실손 보장 축소’에 관한 논의는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논의돼 오던 안건이다. 지난 2004년 OECD가 한국의 ‘의료 과다 진료’에 대한 방안을 권고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기구 의료선진화 위원회가 민간 전문가 15명, 정부 10명으로 구성돼 의료 과다 진료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건강보험재정 악화를 이유로 ‘실손 보장 폐지’를 주장했으나 손보사 뿐 아니라 생보사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며 다시 논의된 바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생보사와 같이 손보사도 80% 보장축소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금융위는 ‘국민 선택권’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반발로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금융위 제 사무관은 “지난해 논의가 중단된 이유는 아고라 등 인터넷을 통해 왜곡된 정보가 유포돼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실손 보장 제한’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며 “당시 의료선진화 민영화 공공체계를 흔드는 이런 행위를 제재하기 힘들어 이 안건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안건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건 지난 5월 27일 청와대 비서진과 보건복지부 금융위 실무자가 교체되면서 급진적으로 진행됐다. 현재 금융위 금융서비스 김광수 국장과 함께 이 안건을 책임지고 있는 성대규 보험과장이 이번에 교체된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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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지난 8일 여의도 공원에서 전국 손보 노조 측의 집회 현장 > | ||
손해보험사 노조 이기철 집행위원장은 “지난 3년 간 논의했다고는 하지만 보험사들과의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위는 올해 6월 2일 갑자기 언론에 보도자료를 유포하며 불을 지폈다”며 “이어 금융위 실무자로 청와대 비서진이 교체되면서 6월22일 기습적으로 법안을 발표하고, 7월15일 관보게재를 예정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졸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의·약사에 제재 안하나?
이 위원장은 “당초 의료과다 방지를 위해선 의사·약사 등을 제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국내 정책이 항상 이들의 영리추구에는 관대하기 때문에 보험사에 대한 보장축소가 대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 사무관 역시 “복지부가 의사·약사가 과다 진료 및 약품 지급을 지양하도록 제재해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점이 있다”며 “복지부가 실손 보장 축소를 70%까지 주장하고, 손보사는 경영권과 소비자 선택권을 이유로 전액보장을 주장하니, 금융위는 90% 축소로 합의점을 찾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보사가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에 로비를 해 80%로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손보사의 실손 의료비 전액보장 상품은 지난 30년간 판매돼 오던 것이고, 생보사는 지난 2005년 처음으로 이 상품을 판매했다. 이에 금융위는 ‘실손 보장 축소’를 논의하던 당시, 시행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2006년 비공식적으로 생보사에 80%이상 보장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30년 간 실손 전액보장 상품 판매를 하며 보험설계사도 조직하며 각종 준비를 해놨는데, 90% 보장축소로 시장이 축소되면 당장 이들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며 “보험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실손 보장에서 약 109%의 손해율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상품에서 이익을 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부가 제재하기 보단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 사무관은 “한 상품에서 손해율이 높다고 다른 상품에서 이익을 맞추려 끼워 팔기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금융당국으로서 보험사가 큰 손해를 감수하며 출혈 경쟁하는 것은 제재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위원회 민간부문 대표 최병선 서울대 교수는 여론이 들끓고 졸속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은 악성규제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손해보험사 노조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양측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2~4주 만에 마련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