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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두 번 죽이지 마라

백병훈 주필 기자  2009.05.26 11: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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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노무현, 그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살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게 됐고, 온 나라가 충격과 침통에 빠졌다. 개인의 비극이고 국가적인 불행이다.

시중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단순한 권력비리의 결과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검찰수사가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죽어서 면죄부를 받으려는 현실도피에 다름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기도 한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떠나 인간 노무현이 서민들에게 삶의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의 희망을 던져주었었다는 점이다. 그는 기득권 사회의 똘똘 뭉쳐진 권위주의와 특권에 맞섰다. 가난한 빈농출신에 가난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한국사회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으나 허물기 어려운 학연과 지역주의에 저항했었고 실천했다.‘바보 노무현’은 그래서 한 때 서민들의 우상이자 영웅이었다.

그러나 개혁과 도덕적 청렴을 덕목으로 삼았던 그도 금권의 유혹을 넘기지는 못했다.

자존심 강한 전직 대통령인 그가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받았을 모멸감이나 자괴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죽음을 택한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 할지라도 자살은‘자기파괴’의 현실적 선택수단일 뿐이다. 법의 심판을 거부하고 고통스런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선택한 극단적인 자살은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다. 어떻게 보면 승부에 능했던 그가 죽음이라는 선택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으로 끝까지 문제를 풀어가는 기개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문제는 또 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동정론과 비판론 사이에서 지금 또다시 사회혼란과 분열의 조짐이 조심스럽게 엿보인다는 사실이다. 뭔지 모를 서서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기운이 멀리로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과거에 있었던 촛불, 구호, 최루탄, 6월항쟁, 탄핵과 같은 불길한 단어가 머리를 스치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경제가 흔들리면서 겨우 회복되려는 순간에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면 국가적 손실과 국민적 고통은 더 연장된다. 타협할 수없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은 곧바로 국가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국민장 기간 중에 강력한 수준의 핵실험을 감행한 것을 보라.

어떤 경우에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빌미로 이 땅에 또 다른 분열과 반목과 갈등이 둥지를 트는 일은 막아야 한다. 추모와 애도의 거대한 물결이 사회적 혼란과 분열의 물결로 둔갑하는 것은 안 된다.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도 안 되고, 정치적 반격과 권력투쟁으로 헌정질서가 위협받는 일도 안 된다. 제2의 촛불로 분노의 불을 지피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졸렬한 선택이다.

굳이 촛불이라면 화해와 용서의 촛불이어야 한다.‘인간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많은 분들의 슬픔을 화해와 용서로‘승화’시켜낼 줄 알아야 한다. 차갑고 하얀 슬픔을 가슴에 부여안은 사람만이 분노와 슬픔을 뜨거운 화해와 용서로 녹여 낼 수 있다. 하야, 피살, 투옥, 자살로 얼룩진 역대‘대통령의 비극’을 여기서 끝내자.

이를 위해 차제에 정치권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기 성찰에 나서야 한다.
이제 한국정치의 전근대성과 권력구조의 후진성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안모색에 나설 때가 됐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재해석을 도모해야 한다. 최고통치자의 배타적 권력독점이 제도화되어 있는 권력집중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 분산과 책임의 정치가 펼쳐 질 때 국가효율과 국민 앞에 대한 무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다. 합리적 권력의 나눔과 공유, 책임과 권한의 균형 잡힌 권력구조는 민주적 공동체 의식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 결속력을 더욱 높여 줄 수 있다.‘아름다운 분산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지금 상황은 MB 정권에‘경계경보’가 내려진 거나 진배없다.
비록 한국인이 감성에 약하다고 하지만,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민초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외면하지 않기 바란다. 끝없는 애도와 추모의 물결을 감성으로만 치부하면 사태의 본질을 간과했거나 후과를 감당해 내지 못할 무지에 가까운 어리석은 판단이 될지도 모른다.(본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