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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무현, 광무황제 그리고 대한문

이종엽 기자 기자  2009.05.25 16: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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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19년 광무황제 조문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분향소가 같은 장소인 덕수궁 대한문에 마련된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성이다> 
 

[프라임경제] 지난 토요일 접한 비보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지면서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의욕에 찬 모습과 영상들이 연일 미디어를 통해 나오고 시민들은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중에서 전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덕수궁 대한문이다. 경찰들과의 대치로 한때 긴장감마저 돌았는데 현장을 가보지 못한 수 많은 시민들도 정부의 대처 방안에 강한 불만감을 표시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

시간을 정확히 90년 전으로 돌리면 지금의 대한문 자리에 수 많은 백성들이 모여 통곡을 하던 장면이 남아 있다. 바로 대한제국 광무황제가 일제의 독살로 붕어한 사실을 두고 전국에서 유생을 비롯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대한문 앞에 모여 망국의 설움과 황제의 급서에 비분강개하던 기록 사진들은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도 상당히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급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일 모여드는 수 많은 인파를 쫒아내기 위한 총독부의 집요한 모습이 왜 90년이 지난 현재에 오버랩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광무황제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단순히 대한문이라는 공간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비록 결말이 비극적이긴 했지만, 살아 생전 최고 통수권자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한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매우 어렵지만 당대의 평가보다 훗날의 평가가 더욱 의미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것이다. 광무황제 역시 당대에는 '나약하다', '결단력이 없다' 등 평가를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아마추어 정치인', '불안한 대통령' 등 극단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한 겹 벗겨내면 전혀 다른 모습들이 등장한다. 광무황제 역시 최근 연구 성과에서 "황제가 암우(暗愚: 어둡고 어리석은)한 인물이라는 비평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사건을 구실로 일본측이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킬 때 처음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기득권과 맞서 민주주의의 진일보와 소통을 통한 서민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즉, 광무황제는 일제와 맞서 투쟁을 했다면 노 전대통령의 상대는 기득권 층이었다. 우리가 책으로 볼 수 있는 인류의 역사는 지배와 피지배의 기록이다. 즉, 권력의 향배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미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90년 전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역사학도 출신인 기자가 본 2009년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 1919년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되묻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