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프라임경제] 토요일 아침 들려온 충격적인 비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오면서 머리는 텅빈듯했지만 어느 순간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상당히 오래전 대학입시를 위해 읊조려본후 오랜만에 되뇌이는 시였지만 만해의 시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은 이날 아침 피부로 절절하게 느낄수 있었다.
![]() |
||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기주의와 탐욕과 몸보신으로 가득찬 세상을 향해 말그대로 '온몸으로' 던진 메시지는 차디찬 티끌이 돼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확히 35년간의 일제강점 치하에서 독립한지도 6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망령은 여전히 한민족의 뿌리에서부터 질기게 안주하고 있는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기회들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부동산가격 폭등과 이로인한 서민들의 상대적인 고달픈 삶도 일제에 뿌리를 둔 기득권층을 배불리기위한 전략과 논리에 휘둘리기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IT기술을 비롯한 여타부문은 급속 발전해가는데 정치와 정신문화는 여전히 일제의 잔재에 발목잡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10년 강제합방이후 한세기에 걸친 일제의 끈질긴 망령은 우리 사회의 걸출한 정신적 지도자마저 죽음으로 내몰고 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5공청문회 당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증인으로 나왔던 전두환 전대통령과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약간은 비굴한듯한, 또는 약간은 겁먹은 듯한 태도로 청문회를 진행했을때 당시 노무현 의원만은 꼭 물어봐야할 말을 거리낌없이 쏟아내며 몰아붙여 세간에 폭발적인 화제가 됐던 것을….
그리고 1990년초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의석수론 3당이었던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을 제쳐두고 합당, 통합 민주자유당이 출범했을때 그는 야합이란 이유로 합류를 거부, '여당'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가시밭길의 '야당'에 잔류했다.
그는 야합(?)에 합류하지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만 했다. 부산시장,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비록 종로 보궐선거에서 재기하긴했지만 그는 종로라는 편안한 길을 두고 부산 출마를 감행했다가 또다시 지역주의의 벽에서 좌절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으로 보답받았다.
그 바보 노무현은 2002년 대선레이스에서 지역색 타파와 정권교체 열망에 힘입어 영남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시발로 이인제후보를 앞서기 시작, 극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로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또 대선 본선에서는 막판 정몽준 후보가 등을 돌리면서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결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이때만 해도 길고긴 질곡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줄 알았었다. 역사는 길지만 자주적인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도 이제는 일제 잔재를 말끔하게 걷어내고 독립국가로서의 국운이 융성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009년 5월23일 들려온 소식은 질곡의 역사의 마침표가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일국의 지도자(그는 "국민이 주권자요, 자신은 종"이라고 생각했지만)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귀향한지 1년여만에 죽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개 필부의 짧은 생각이지만 노전대통령은 단지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또는 가족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이 마음아파서, 아파트 10층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평소 당당하면서도 민주화 소신이 강했고 한편으론 서민적이면서도 강대국들에게도 전혀 굽히지 않았던 바보 노무현은 아마도 자신의 생명을 다른 가치를 위해 기꺼이 내놓을수 있을 사람이라고 말하더라도 감히 무리한 추측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는 1년여전만 해도 일국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때문에 단지 정황증거만으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공표 금지원칙등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한채 언론으로부터 사실상 난도질 당해야했을까?
그렇다고 바보 노무현은 결코 "난 억울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온몸으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분명 그는 무언가를 지키기위해 온몸을 산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필자처럼 소리없는 겁쟁이들을 일깨우고, 당신의 생명으로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거꾸로 가고 있던 시계 바늘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는 떨어지는 시계추 역할을 과감히 선택한 것은 아닐까?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임경오 /프라임경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