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무리한 보장내용을 앞세워 판매한 보험 상품이 생명보험사에 큰 손해를 입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1980년 초 판매했던 백수(白壽)·장수(長壽)보험과 2000년 여성 질환 수술을 보장하던 여성전용 보험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같은 상품의 보험금 지급 시기가 다가오면 생보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가입 당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생보사의 두 얼굴’을 취재해봤다.
최근 생명보험 관계자들의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6000건 정도 남았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 중 장수보험 가입자들의 만기도래일이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고금리를 약속하는 보험 상품들이 대거 출시된 바 있다. 고금리 저축보험인 백수보험과 고금리 연금보험인 장수보험이 바로 그것. 가입당시에 생명보험사들에 ‘전성시대’를 열어준 상품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기도래일이 다가오자 ‘발등의 떨어진 불’이 됐다.
보험관계자는 “장수보험은 당시 10% 고금리 상품으로 저축의 개념으로 연금 상품을 출시한 것이었다”며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저금리 상황으로 바뀔 줄은 예상하기 힘들었다”며 상품을 무리해서 만들었음을 시인했다.
◆“장수보험, 종신보험으로 갈아타라” 치열한 유도
서울 강북구에 사는 이모(45·여)는 보험설계사로부터 기존 장수연금 상품에 대한 계약을 해지하고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 새로 계약하자는 말에 솔깃해 지난 2003년 보험 상품을 갈아탔다.
이 씨의 기존 계약은 1999년 5월부터 매월 20만원씩 보험료를 내는 장수보험으로 53개월가량 계약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험설계사는 이 씨에게 가입한지 4년이 지났기 때문에 해약을 해도 이 씨가 낸 1060만원의 보험료보다 많은 1070만 원 이상의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가입한 연금보험 형식의 장수보험상품은 20년 보험료를 지불해 만기일이 도래하면 연금형식으로 연 8~12%의 이자가 붙어 배당이 높은 연금을 매달 지급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고객에게는 혜택이 큰 반면 보험사에는 손해를 주는 상품이다.
때문에 고금리 상품을 해지시키기 위해 일부 보험설계사는 ‘보험 회사가 망할 위험이 있다’, ‘보험보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종신보험 등 4%대의 저금리 계약을 갈아타도록 유도해 역마진 부담을 줄이려 했다.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고금리 저축상품 가입 고객이라면 어떤 감언이설에도 넘어가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고금리 상품으로는 ▲1982년 7월20일 이전에 판매된 종신연금과 백수보험, ▲82~87년 팔린 단체연금과 장수효도보험, ▲87~99년까지 판매된 장수연금, 개인연금, 으뜸저축, 듬뿍 저축 보험 등의 고금리 저축보험 상품은 해지시키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제 2의 백수보험’? 분쟁시 소비자가 질 것?
최근 고금리 보험상품의 만기도래일이 다가옴에 따라 생보사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백수보험의 만기도래일을 앞두고, 생보사와 고객 간의 분쟁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던 악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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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2004년 이후 '백수보험'과 관련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 공간 토론방에선 쉽게 이와 같은 글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음(daum)'의 보험분쟁 관련 카페 참조 > | ||
장수보험과 백수보험은 고금리 저축성 보험이라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백수보험은 매년 이자를 받고 만기시에 목돈을 돌려받는 저축보험인 반면 장수보험은 만기시 매월 연금형식으로 돌려받는 연금보험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보험금 지급방식을 제외하고 고금리를 통한 배당금 체계 방식이 비슷하게 설계된 이 상품들 중 백수보험은 1980~1982년 판매돼 월 3만~9만 원가량의 보험료를 3~10년간 지불하면 55세부터 매년 연금을 주고 시중금리와 예정이율의 차이에서 생기는 600만~1000만원의 확정배당금을 추가 지급토록 설계했다.
삼성·교보·대한·흥국·금호·알리안츠 생명 등 6개 회사가 판매한 백수보험은 시중금리와 예정이율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확정 배당금을 지급하는 종신연금 상품으로, 생보사들이 시중금리 하락을 이유로 배당금 지급을 거절하자 2004년 4월 이후 2500여명의 가입자가 355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분쟁으로 불거진 바 있다.
당시 S보험사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87년부터 시행된 그 약관규제법은 약관의 명시·설명의무, 그 의무 위반시 효과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이 법 시행 이후에 체결된 계약부터 적용된 것으로 그 이전 약관에 의해 체결된 이 사건 보험계약은 구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987년 약관규제법이 시행되기 전에 가입한 상품에 대해선 약관에 명시된 것을 지킬 의무와 관련된 규제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1980~1982년에 판매된 백수 보험의 약관에 표시된 고객에게 약속한 ‘확정 배당금’은 지킬 의무가 없다며 재판부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법대로’ 주장, 보험계 공신력 실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장수보험도 1987년 전과 후에 가입된 상품들로 재판부가 시기를 두고 사건마다 다른 판결을 내릴 여지가 있다.
장수보험은 8~18% 고정금리에서 시작해 1년이 지날 때마다 보너스가 붙어 최고 28% 금리까지 발생하는 상품으로 알려졌으며 일각에선 보험사들이 고객들에게 장수보험을 해지시켜 보험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이후, 장수보험의 만기도래일 역시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생보사로선 매년 금리하락과 맞물려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어 해당 상품의 배당금 지급을 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D보험사에선 배당금이 정해진 지급률로 공통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고 회사의 이익에 따른 분배라는 점을 이용해 M&A관련 비상상태를 이유로 배당금을 적게 지급한 바 있다.
현재 장수보험가입자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K보험사 관계자는 “지난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두고 보험사와 고객 간의 분쟁에서 이미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보험사에 손을 들어준 사례가 있다”며 “고정된 금리가 확정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백수보험에 대해 보소연에서 소송을 몇번 했으나 대법원까지 가서 기각되고 ‘보험사쪽이 다 맞다’라고 손을 들어준 바 있다”고 설명하며 장수보험 역시 원만히 해결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렇게 보험업계가 장수보험 문제를 백수보험 사례처럼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높다. 백세보험의 승소 전례만 놓고 ‘법대로’를 외칠 경우 공신력 저하 등 산업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
최근 금리상황이 더 좋지 않은 가운데 백수보험보다 더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장수보험의 보험금 지급 문제를 처리할 묘안이 나올지, 생보사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