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1세기의 한국 재계는 과거에 비해 큰 소용돌이 속을 걷고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상황에서 많은 기업이 새로 등장하거나 몰락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것이 재계 1위 기업이라도 한치 앞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현재의 수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일까. <프라임경제>는 연속기획으로 변화의 시대를 걷고 있는 재계 주요기업들의 어제와 오늘을 완벽 대해부한다. 그 16번째 순서로 <동국제강>편을 마련했다.
철선회사로 출발…반세기 지나오며 ‘종합철강그룹’으로 변모중
장세주 회장, M&A 잇따른 실패…‘철강종가집’ 자존심에 상처
올해로 창립 55주년째를 맞은 동국제강은 ‘철강 종가집’의 자존심과 종합철강그룹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상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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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국내 최초로 조강용 전로에서 강편으로 재생시켜 와이어 롯드를 생산했으며, 1965년에는 국내 최초로 50톤 고로를 준공해 한국 철강공업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또한 이 당시, 연산 6만9000톤의 제강시설과 6만톤의 제철시설에 의해 국내 최초로 제철-제강-압연의 일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도약 계기는 지난 1985년 국제그룹 해체이후 연합철강공업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고속성장을 거듭한 동국제강은 지난 1998년, 약 1조원을 투자해 주력 생산기지를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전하고 모든 생산제품의 제조 설비를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설비체제로 전환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동국제강의 후판 생산능력은 기존 포항제강소 1후판공장 연산 100만톤을 합쳐 연산 250만톤 체제를 갖추며 ‘세계 3위권’으로 부상했다.
◆ ‘철사와 못’ 팔은 종자돈으로 그룹 출범
동국제강의 모태는 장경호 창업주가 부산에 세운 '대궁양행'에서 출발한다. 해방직후 신선기 몇 대를 인수하면서 철과 인연을 맺었고, 1949년 철사와 못을 생산하는 조선선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장경호 창업주는 조선선재에서 축적한 자본을 종자돈으로 1954년 서울 당산동에 동국제강주식회사를 창립하고 부산 용호동 22만평 부지에 대규모 철강공장을 건설하면서 철강전문기업으로서의 체계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1971년 국내 최초로 후판 공장을 준공하고 생산에 들어간 동국제강은 1974년 한국철강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선다.
그러던 중 1975년에 들어서며 장경호 창업주가 타계했다. 이에 1964년부터 대표이사로 그룹 경영을 책임져오던 장상태 전 회장이 창업주 타계 10년 뒤인 1985년 회장으로 취임하며 동국제강의 2세체제가 시작됐다.
장상태 전 회장은 오늘날 동국제강의 뼈대를 만든 주역으로 1988년에는 그룹 출범이래 처음으로 동국제강을 재계 10위권에 진입시켜 놓았다.
동국제강은 현재 3세체제가 진행 중이다. 故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회장이 2001년 바통을 이어받아 동국제강의 경영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장 회장은 취임 3년 만에 창사 이래 최대실적을 거두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5조6천499억원, 영업이익 8천562억원, 순이익 1천719억원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최대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1978년 동국제강에 처음 입사한 장 회장은 23년동안 회계, 기획, 공장건설, 영업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친 전문경영인의 소양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적인 보수경영을 유지해오던 동국제강은 장세주 회장 취임 이후 사업확장을 통한 공격적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 지나친 과욕…투톱체제 ‘흔들’
창립5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4년 장 회장은 “미래 100주년에 부끄럽지 않은 동국제강 그룹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향후 5년 내 자타가 공인하는 종합철강그룹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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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제강의 3세체제를 이끌고 있는 장세주 회장은 잇따른 M&A 실패로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꼬리를 물고 있다.> | ||
동국제강이 자랑하는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사장의 형제간 ‘우애경영’도 엇박자를 반복하며 이렇다할 성과를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며 지난 2005년 단행했던 ‘유일전자 인수’가 대표적 실패 사례다.
당시 장 회장과 장 부사장 형제의 합작품으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온 것.
장 부사장이 회사의 미래를 위해 휴대폰 부품 관련 IT업체였던 유일전자 인수를 처음 제안했을 당시만 해도 사내에는 ‘철강 분야에 집중해야지 다른 사업 벌일 때가 아니다’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장 회장은 고심 끝에 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결국 1000억원을 들여 유일전자 인수에 성공했지만, 예상했던 시너지는 거의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시장점유율은 반토막이 났고,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철강그룹이 신사업에 진출하는데 들어간 대가 치고는 너무 혹독했다.
동국제강의 M&A 실패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절치부심한 끝에 쌍용건설 인수전에 다시 뛰어들었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만 것.
인수 경쟁사였던 남양건설보다 약 30% 높은 주당 3만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입찰금까지 내세워 우선협상자가 되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건설경기가 급격히 후퇴하는 것을 간파하지 못해 인수결정을 지루하게 끌어오다 결국 캠코로부터 ‘인수불가’ 판정을 받았다.
동국제강을 바라보는 M&A 업계의 시각은 싸늘해졌고, 주주들의 반발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처럼 불확실한 사업전망을 상쇄할 수 있는 사업다각화 문제가 동국제강의 골칫거리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룹 전략기획실장으로 신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장세욱 부사장의 역량에 대한 의문과 장 회장의 경영능력이 한계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장기화되며 장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브라질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마저 차질이 예상된다.
실패한 M&A에 혹독한 수업료만 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장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큰 과일은 씨앗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사자성어까지 내세우며 투자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했다. 공격적 투자로 불황에 맞선다는 기존의 전략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철강보국’이라는 기업 가치 아래 철강종가집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장세주 회장이 갖가지 악재와 시련을 딛고 그룹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