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설익은 정책이 일선 기업 경제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침체로 자칫 장기 불황 진입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수 진작 등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세제 감면 방침’ 발표 이후 자동차 판매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자동차 업계가 심각한 역풍을 맞고 있다는 불평이 산업계에 일고 있다. 아울러, 이미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당국이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문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성급한 발표로 수요 사라진 4월 車시장
정부는 지난달 26일, 2000년 이전에 등록된 자동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구입할 경우 최대 250만원에 이르는 세금 감면혜택을 주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번 대책을 5월부터 시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4월에는 '대기 수요'로 극심한 내수 부진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고, 이런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현대차는 대책발표 당일인 지난달 26일 이후 3월 말까지 집계한 자료를 살펴보면, 하루 평균 차량 판매대수가 2600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대책 발표 전 하루 평균 3000대에 비해서 13% 줄어든 수치다. 기아차 역시 동기 자료조사 결과, 하루 평균 1800대로 대책 발표전 2000대에 비하면 10% 감소하는 타격을 입은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체력이 강한 편인 현대차 외에도 상대적으로 마이너에 해당하는 GM대우, 쌍용차 등 완성차 업체 역시 같은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력 약한 쌍용·GM대우 사실상 사형 선고
이같은 문제는 GM대우와 쌍용차 등에게 특히 가혹한 처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미 중국 상하이차와의 결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차는 이번 사태로 설상가상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잖아도 회사가 흔들린다는 식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려 오다가 이제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첫 삽을 뜬 상황인데, 이번 일로 그나마 차를 사려던 고객들마저 관망세로 들어서면서 매출이 급감하는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결국 쌍용차가 대형 해고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7일 발표설이 나돌다가 8일 중 발표로 변경)도 이러한 강력한 펀치를 연타로 맞은 데 따른 것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쌍용차의 회생 의지 싹을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짓밟아 버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일로 회생 의지에 지장을 적잖이 받은 것은 GM대우도 마찬가지다. GM대우는 이미 미국 GM본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감산), 임원급만이 아닌 일반사무직원 월급까지 줄이는 등 자구 노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야심작으로 내놓은 ‘라세티 프리미어’가 미션 교체의 석연찮은 추진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미지가 실추됐고, 당국이 리콜 여부를 예비조사하는 문제까지 걸려 자칫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의 설익은 정책 혼선으로 인해 4월 차시장 냉각이 겹침으로써 GM대우로서는 최악의 경우 파국을 맞을수도 있는 상황으로 몰려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식경제부에 이어 산업은행까지도 GM대우 추가지원 (잠정) 거부를 한 상황에서 정부가 세 번째 타격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GM대우 회생 노력을 돕지 않겠다고 재차 외면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자체를 축소시켜 버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4월만 버티면 되는 게 아니다? 중고차 업체만 ‘생긋’
문제는 이런 상태가 4월 한달만 꾹 참으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정책이 당초 발빠른 발표를 내놓을 때와는 달리, 청와대와 정부측 조율 등의 문제로 인해 5월 시행이 어려울 수 있게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세금감면 대책을 하루 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앞당긴 시행은 고사하고 정상 추진 자체가 어려울 것처럼 상황이 흘러가자 풀이 죽은 모습이다.
일이 복잡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선 예산 문제도 그렇지만, 정부와 청와대, 국회 등이 손발을 맞춰야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세인 개별소비세 감면은 조세특례제한법을, 취득·등록세 인하는 지방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을 각각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공룡 여당’ 몸집을 자랑하지만, 문제는 이런 몸집에 비해 청와대나 정부 정책을 입법처리하는 수완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소리가 나온다.
우선 야당인 민주당과 지난 미국산 쇠고기 정국부터 추경 등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우왕좌왕해 온 한나라당은 일단 4월 재보선 이후까지는 큰 전투력 발휘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공천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졌다고 보고, “4월을 민생·경제국회로 삼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한나라당 역시 4월 재보선을 의식해 무리수를 두는 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박희태-홍준표 체제의 한 축인 홍 원내대표 임기가 곧 끝나는 상황이어서 약한 장악력이 오히려 더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없지 않다.
이렇게 당·정·청간에 손발맞추기를 통해 이번 정책을 빨리 시행하기 어려운 사정은, 시장에 불확실성만을 더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 정책이 어떻게 추진될지 확실히 알 수 없어 매입을 망설이고 있고, 자동차 판매를 하는 일선 영업사원들도 자신있게 답을 줄 수 없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이번 조치가 단행되는 게 중고차 시장에만 득이 될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3월 조치 발표 이전에 2000년 이전 출고 모델을 보유하고 있었어야 이번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해석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정책이 표류하면서, 단순히 2000년 이전 등록 모델을 갖고만 있으면 된다는 설이 퍼져나가, 오히려 중고차 수요만 상대적으로 느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 이에 따라 폐차가 검토됐던 차량들 역시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들게 되고, 시장에서는 신차 수요는 얼어붙고, 중고차 시장만 재미를 보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좋은 의도만 갖고는 효과 못 거둬
마치, 이번 자동차 문제는 예전에 약사법 개정 당시에 중고 한약재 서랍장만 불티나게 팔렸던 사태를 연상케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2년 이상 한약을 취급하던 약사들에게 한시적으로 한약 조제를 허용한다는 단서 규정이 입법되자 허술한 틈새를 악용하려는 일부 약사들이 ‘중고 한약수납장’을 구매하려 들어 약장값이 폭등하는 엉뚱한 일이 빚어진 바 있다.
전세값 상승을 막고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만으로 당국이 갑작스럽게 ‘2년 계약제’를 도입하자 일거에 전셋값이 뛰어오르는 부작용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가깝게는 이명박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폐지에 열을 올렸다가, 안정적 세수를 당국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추경 추진 상황에서 불거진 것도 이번 자동차 세제 할인 정책처럼 아마츄어리즘의 일례로 꼽히고 있다.
정부가 좋은 의도에서 추진하더라도 제반사정에 대한 종합적 이해나 문제의 추진 능력이 결여되는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불만이 자동차산업계 종사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당국이 자동차 업계의 자구노력 선행만 외칠 게 아니라, 1만 5000여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수많은 협력업체들까지 거느려, 사실상 국내 산업의 상당 부분을 먹여 살리는 자동차산업을 좀 더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