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재계 8위에 올라와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의 역사는 한마디로 ‘집념과 도전’으로 일궈낸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특히 금호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등 재계 10위권 그룹 중 날개를 단 듯 조용하고도 확실하게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적지 않다. 특히 올해로 창립 63주년을 맞은 금호의 ‘형제경영’은 재계 모범이 되고 있다. 고 박인천 금호 창업주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전 회장, 차남인 고 박정구 전 회장에 이어 3남인 현 박삼구 회장까지 형제경영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친족간 지분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란 분위기다. 재계 일각에선 잡음 없는 형제경영은 고 박인천 창업주 회장이 생전에 그룹 경영 원칙을 세우고 2세들이 이를 따른 것에 비롯됐다는 관측도 우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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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금호는 올해에도 ‘500년 영속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전략인 ▲사업구조의 안정화 ▲건실한 재무구조의 구축 ▲아름다운 기업문화 창달 등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간다는 계획을 펼쳐나가고 있다.
지난 1946년 박인천 창업주가 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광주 택시를 설립하며 오늘날 금호를 태동시켰다. 고 박인천 회장은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긴 46세에도 불구하고 운송업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제2인생을 설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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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 창업주를 이어 고 박성용․고 박정구 전 회장에 이어 3남인 현 박삼구 회장까지 ‘형제경영’이 돋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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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중고택시 이후 현재 재계 8위까지
박 회장은 60년 광주여객의 타이어 품귀난을 해결하기 위해 금호타이어를 설립했다.
이후 61년 4월부터 하루 20본 정도의 타이어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기술부족과 열악한 생산환경 등은 시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호박타이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을 만큼 조악했던 품질은 전문기술자를 현장에 영입해 숙련도를 높이는 한편, 체계적인 이론교육을 통해 생산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였다.
“경영효율성을 위해 계열사를 통합관리 할 수 있는 지주회사체제로 가야 한다” 박인천 회장은 72년 어느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장남 박성용 박사로부터 ‘지주회사’ 설립 건의를 받았다. 즉 그룹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금호는 지난 72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박인천 회장을 비롯해 박성용씨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해 지주회사인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장남인 박성용 교수를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해 그룹 출범의 막중한 역할을 맡겼다. 73년 1월1일 창업주 박인천 회장이 초대 그룹회장에 취임하면서 금호그룹체제를 출범시켰다. 73년 그룹출범 당시 6개에 불과했던 계열사가 금융, 철강 및 전기·섬유 및 건설업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4년 만인 77년에는 12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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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인천 창업주> |
금호타이어는 양동공장에서의 계속되는 증설작업에 힘입어 69년에는 연산 25만본 규모로 생산능력을 확장했다. 70년대 고속도로 건설 및 자동차공업의 발달로 국내 타이어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1988년 12월15일 아시아나항공의 김동휘 기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인수해온 ‘보잉737-400’ 1번기가 지금의 아시아나항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8일 뒤 12월23일 아시아나항공은 서울∼부산, 서울∼광주 정기운항에 들어갔다. 이후 아시아나는 최신기종을 잇따라 도입했고 90년 1월10일 서울∼도쿄노선에 ‘색동날개’를 투입시키면서 마침내 국제무대에도 화려하게 진출했다.
◆형제간 분쟁 없이 ‘화합경영’ 과시
84년 6월6일 타계한 박인천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박성용 그룹부회장이 2대 회장에 취임행사도 없이 조용히 취임했다. 서강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자문역으로 그룹경영을 도와온 박 회장은 금호실업 사장과 그룹부회장을 거쳐 10년만에 2세 경영시대를 열은 것이다.
박 회장은 취임에 맞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당시 9개사인 계열사를 4개로 줄이고, 비주력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경영 내실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석유화학분야를 그룹 주력업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그는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95년도에 4조원 규모로 끌어올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국제적 기업으로 일궈냈다.
금호가 재계 안팎으로 주목받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형제간 ‘대권’ 물림이 손꼽힌다. 이는 고 박 창업주의 2세들의 지분 분배와 관련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이 생기기 쉬우므로 남자들에게 상속한다는 합의 경영 형태 원칙을 따른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금호그룹 창립 50주년이던 96년 4월7일, 바로 아래 동생인 동산(東山) 박정구 회장에게 스스로 회장직을 물려줬다. 부자간에도 경영권 갈등을 빚는 것이 다반사였던 재계에서 당시 금호의 형제간 경영권 승계는 재계에 감동과 함께 ‘화합경영’이라는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금호그룹 3대회장에 취임한 박정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아주생명을 인수, 금호생명으로 변경해 본격적인 보험업에 진출, 강원도 설악과 전남 화순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 ‘관광·레저사업’ 부문을 확대해 나가는 등 신규사업 진출과 기존사업 재편을 추진했다.
동산은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 적자기업이었던 주식회사 금호를 2년만에 매출 1579억원, 순이익 120억원의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영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계열사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에서 철수하고 비주력사업부문을 정리했다. 이런 박 회장의 발빠른 행보에 힘입어 금호는 지난 99년, 창사이래 최대 흑자인 약 242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며 IMF파고를 헤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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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 |
박 회장은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에 금호가 성공하기 위해선 ‘얼마나 유능한 인재가 모이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우수인재가 금호에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우수 인재가 커 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다.
◆3세들도 경영 참여 활발
한편 금호의 ‘형제경영’은 여타 그룹들처럼 형제간 ‘피도 눈물도 없는’ 지분 다툼을 벌이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 특히 금호는 장자승계 원칙이 일반적인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 2세 가구별로 똑같은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고 박성용 회장 등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다. 3세는 고 박성용 명예회장 아들 박재영 씨, 고 박정구 명예회장 아들 박철완 씨, 박삼구 회장 아들 박세창 씨,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 아들 박준경 씨다.
3세 가운데에는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전략경영본부 상무,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전략팀 부장,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장남인 박준경 금호타이어 회계팀 부장 등 그룹 3세의 경영 참여도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