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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회장 '불혹의 위기경영' 빛나

[50대기업 완벽大해부] 동부그룹 ①

이광표 기자 기자  2009.02.06 10: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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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1세기의 한국 재계는 과거에 비해 큰 소용돌이 속을 걷고 있다. 기업은 시대와 경제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순응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침몰했다. ‘거대공룡’ 기업이었던 대우의 몰락, 현대그룹의 분열 및 외환위기 사태 이후 동아건설, 해태, 거평, 한라 등이 침몰하는 등 재계 판도가 급변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대기업들이 몰락한 재벌의 자리를 메워나가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그 중 동부그룹은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도 재계 중심 반열에 올랐다. 본지는 [대기업 완벽大해부] 기획특집으로 <동부그룹>편을 마련했다.


올해 창립 40돌을 맞아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동부그룹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 즐비한 재계에서는 후발주자 격에 속한다. 그러나 동부가 ‘불혹’의 의미처럼 이제는 안정된 궤도로 접어든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20대에 창업한 무명건설사를 40년이 흐른 지금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김준기 회장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동부그룹이 불혹의 나이까지 접어들며 이 같이 변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부의 창업자이자 지금도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준기 회장을 리더십이 손 꼽힌다.

지난 1969년, 20대 청년이자 대학생이었던 김 회장은 ‘좋은 기업’이라는 이념 아래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의 모태)을 설립한다. 당시 2500만원의 자금으로 설립한 건설사가 오늘날 자산규모 20조원, 재계 10위권이라는 굴지의 그룹 시초가 된 것.

미륭건설을 설립한 이래 3대 사업분야(제조·서비스·금융)를 중심으로 내실 있게 성장시켜 온 김 회장은 지금도 재계 리더로서 왕성한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다.

◆ 20대 청년, 창업을 결심하다

1944년 12월4일, 강원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 회장은 여러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그에게 군대 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과 함께 40일간 다녀온 미국과 일본 여행이 향후 그의 도전사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선진문물을 접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는 기업이 발전하지 않으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예정돼 있던 유학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한다.

미륭건설을 설립할 당시 집안 어른들은 물론 주변 대부분의 친지들은 나이 어린 사람이 사업에 성공하기 어렵다며 창업하는 것에 대해 극구 반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김 회장의 확고한 신념은 굽혀지지 않았다. 이 때 그의 나이 만 24살 때였다.

이에 김 회장은 약관을 조금 넘긴 젊은 시절 1969년 1월 24일 자본금 2500만원과 직원 2명으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했다. 당시 ‘미륭(美隆)’이라는 말에는 ‘아름답게 솟아 오른다’라는 뜻 그대로 꿈과 이상을 가지고 좋은 기업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었다.
 
이런 김 회장의 이상은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동부의 경영이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기업의 취지하는 이념을 함축하는 ‘좋은 기업’을 향한 김 회장의 의지가 동부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 20대 시절 창업한 무명건설사의 성공신화…재계 중심 반열 ‘우뚝’

미륭건설 설립 이후 당시 업계 큰 화제가 됐던 일화 중 하나로 1970년, 그 해 국내 최대의 건축공사인 연세대 이공관 공사를 설립 일 년에 불과한 미륭건설이 수주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김 회장은 이 공사 수주가 앞으로 회사의 진로를 좌우하므로 반드시 따내겠다는 각오 아래, 일면식도 없던 연세대 발주 관계자를 수십차례 찾아가 집요한 설득을 펼친 끝에 공사 수주에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외국인 공사 및 미군 공사까지 수주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동부건설이 자랑하는 ‘중동신화 창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국 동부건설의 이 같은 공격적 경영전략이 주효해 대규모 정부공사에도 참여하게 되며 창업 당시 무명의 건설회사에서 업계를 주도하는 주요 건설사로 성장하게 된다.

1980년, 동부는 중동에서 거둔 대대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창업 10년 만에 30대 그룹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동부는 중동신화를 통해 얻은 막대한 외화를 당시 주류를 이뤘던 소비재 산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금속, 화학, 건설·물류, 금융 등 4대 국가 기간산업분야에 전액 재투자하며 차별화 된 사업복합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동부그룹 본사 전경.>
   
1990년대에 들어선 동부는 사업 구조조정과 대규모 신규투자를 통해 회사의 경쟁력과 내실을 집중적으로 다져나갔다. 특히 금융분야에서 동부화재의 경영을 정상화하였으며, 국민투자금융을 동부증권으로 전환해 종합금융그룹으로의 성장기반을 마련했다.

이처럼 한발 앞선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합리화 노력은 90년대 후반 불어닥친 외환위기를 극복 하는 과정에서 큰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동부는 퇴출기업이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등의 대형 투자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창업 20년 만인 1990년에 20대 그룹까지 진입하는 기염을 토한다.
 
2000년대를 맞이하며 동부는 '전원참여·고효율·자율경영'의 슬로건 아래 21세기 초일류기업을 다짐하고 나선다. 3대 사업분야별로 자율경영·전문경영체제를 강화하했으며, 성과주의 제도와 6시그마를 전사적으로 도입하는 등 최대의 성과 창출을 위한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또한 모든 사업영역의 선진화·첨단화를 지금도 추진하고 있으며, 전기로 제철사업, 합금철사업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 계속되는 도전으로 불황도 뛰어넘는다

김준기 회장은 종종 “미국의 이민정신과 개척정신”을 강조하곤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로 정통 동부맨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삼성 출신 대거 영입 등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수혈하는 모습도 이런 이민정신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2009년 새해를 맞은 동부그룹은 올해 글로벌 불황속에서도 ‘제2의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준기 회장은 올해를 ‘비상경영의 해’로 선포했다. 글로벌 불황 속에 임직원들의 위기의식이 없다면 새로운 도약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올 초 신년사에서 “전세계가 불황의 쓰나미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러한 위기상황은 창업 이래 지난 40년 동안 숱한 위기를 겪은 동부에도 예외가 아니며, 유례없는 불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글로벌 선진기업으로의 비전을 앞당겨 가야하므로 2009년 한 해를 비상경영의 해로 선포한다”며 임직원들의 단합과 고통분담을 독려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동부가 창업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며 “동부의 창업정신인 도전과 기업가 정신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실천해 글로벌 선진기업을 앞당겨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혹을 맞은 동부그룹과 40년째 오너 자리에서 그룹을 책임지고 있는 김준기 회장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