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가 한국GM을 향후 글로벌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다시 규정했다. 한국GM은 15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GM 청라 주행시험장 타운홀에서 'GM 한국사업장 2026 비즈니스 전략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생산 효율화와 전기차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해외 생산거점을 축소하는 가운데 GM이 한국을 오히려 확장 기지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의미가 남다르다.
청라 주행시험장에 구축된 버추얼 엔지니어링 랩(Virtual Engineering Lab)의 개소는 상징 이상이다. 이는 한국GM이 단순 생산기지를 넘어 글로벌 엔지니어링·개발 허브로 위상을 재편하겠다는 GM의 장기 전략 전환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GM이 이날 제시한 메시지의 핵심은 △한국 엔지니어링 센터의 전략적 재정의 △한국 생산시설의 중장기 가동계획 및 투자 연장선 확보 △내수시장 재진입 의지가 반영된 4-브랜드 체제 확장 총 세가지다.
이는 철수설을 수년 간 끌고 다니던 한국GM이 오히려 GM 내부 구조에서 존재감을 다시 키우는 축으로 부상했다는 역설적 변화를 보여준다.
◆'버추얼 엔지니어링 랩' 개소
먼저 GM이 청라 주행시험장 내에 구축한 버추얼 엔지니어링 랩은 단순한 시설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GM은 지금 Road to Virtual(가상화 중심 개발) 전략을 통해 모든 글로벌 개발 프로세스를 재편하고 있다.
이 중심에 한국이 자리 잡았다. 버추얼 센터는 △전기 시스템 벤치(Electric System Bench) △드라이버-인-더-루프 시뮬레이터(Driver-in-the-Loop Simulator) △VR 워크-업 스테이션(VR Walk-up Station) 등 10개 벤치랩을 통합한 시설이다. 가상환경–실차 테스트 간 개발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디지털 트윈 기반 개발 체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한국 엔지니어들이 제품 개발의 초·중·후단을 모두 수행하는 구조가 더 공고해지며, GM도 한국을 미래 개발의 속도-효율 시범지로 삼겠다는 의지다.
GM이 "한국은 미국 본사 다음으로 큰 엔지니어링 조직"이라고 다시 강조한 것도 단순 외교적 수사는 아니다. GM이 최근 구조조정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고 되레 확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브라이언 맥머레이(Brian McMurray)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사장은 "신규 버추얼 센터를 포함한 청라 주행시험장의 리노베이션은 가상–실물 통합 개발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제공한다"며 "이런 변화는 GM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역량을 한층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생산능력 '최대 가동' 선언
이날 GM은 단도직입적으로 "한국 생산능력을 최대 가동(최대 50만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생산된 글로벌 판매 모델들이 성과를 내면서 GM 내부 인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미국 소형 SUV 시장 판매 1위, 한국 생산 차량이 미국 소형 SUV 시장의 36.7%를 차지하는 등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트랙스 구매자 중 미국 고객의 절반 한국 구매자의 2/3이 신규 고객이라는 점도 GM이 강조한 지점이다. 한국 생산기반이 GM의 글로벌 점유 확대 전략에서 실제 성과를 입증한 것이다.
GM은 이를 바탕으로 최소 3억달러(약 4400억원) 규모의 생산·제품 업그레이드 투자를 확정했다. 이는 2028년 이후까지 생산을 이어가기 위한 사후 보장 장치 성격도 강하다.
헥터 비자레알(Hector Villarreal) 한국GM 사장은 "한국GM은 한국에서 생산된 차량에 대한 강한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면서 GM의 글로벌 성장 전략에서 핵심적인 생산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 생산 기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것이다"라며 "한국에 대한 GM의 확고한 약속에는 변함이 없고, 그 어느 때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준비가 돼 있다"고 첨언했다.
◆'4-브랜드 체제' 내수시장 재정비
GM은 △쉐보레 △캐딜락 외에 국내 자동차시장에 2026년 초 GMC 확장 론칭, 2026년 중 뷰익(Buick)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를 제외하고 GM의 4개 브랜드가 모두 판매되는 최초의 시장이 된다.
이는 △한국 소비자의 SUV 선호 트렌드에 적극 대응 △브랜드별 가격대·카테고리 포지션을 세분화해 고객 저변 확대 △내수시장 철수설을 단번에 반전시키는 메시지 효과 등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GMC는 픽업·프리미엄 SUV 중심, 뷰익은 메인스트림 SUV 중심으로 교차 포지셔닝된다. 여기에 캐딜락의 전기차 라인업(에스컬레이드 IQ 등)이 더해지면서, GM의 상품 전략은 사실상 다양한 SUV 포트폴리오 체제로 재편된다.
판매채널도 기존 브랜드별 분리에서 벗어나 쉐보레→뷰익, 캐딜락→GMC와 같은 교차 판매 구조로 확장돼 네트워크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조정된다.
한국GM은 "새로운 브랜드 도입으로 중형 SUV 모델을 포함한 4개 이상 신차 출시 예정으로 2026년 GMC 3개 차종, 뷰익 1개 차종이다"라며 "지난달 에스컬레이드 IQ를 선보인 캐딜락은 추가 전기차 모델 도입을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흑자전환과 정상화 로드맵
GM은 이번 전략 발표에서 '2024년 1.6조원 흑자전환'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단순히 수익 개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2018년 경영정상화 이후 단순 생존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는 서사 구조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다.
그 배경에는 △한국 생산시설 1330만대 생산 경험 △1만2000명 직접 고용 △19조원 규모 국내 부품 구매 △266개 협력사와의 공급망 연계 등 GM 입장에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시장·시설'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즉, GM은 한국을 비용·리스크 요인으로 바라보던 과거 시선에서 벗어나 글로벌 성장 구도에서 실질 기여도가 높은 전략 거점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2024년 흑자 기록은 GM 한국사업장에 중요한 이정표다"라며 "2018년에 수립한 정상화 계획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GM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GM을 한국 자동차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시켰다"며 "앞으로도 차량 디자인과 엔지니어링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전 주기 역량을 한국에서 더욱 강화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세대 내연기관차,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한국 고객을 위한 첨단 주행 기술을 도입하며, 한국 자동차 생태계와 지역경제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한국시장과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단순 지역사업장→전략적 성장 거점
이번 발표를 종합하면 GM이 한국GM을 바라보는 관점은 한층 명확해졌다. 생산 측면에서는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는 핵심 거점으로의 위상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미국시장 성공을 계기로 한국 생산 모델의 글로벌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한국 공장의 역할은 단순 조립을 넘어 GM의 글로벌 공급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축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 부문에서는 연구개발센터가 미래 엔지니어링 모델의 시범 허브로 격상됐다. 청라 주행시험장 내 버추얼 센터는 개발 효율성과 속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거점으로, GM의 글로벌 개발 방식 전환을 실제로 실행하는 시험장이 된다. 이는 곧 한국이 GM 전체 R&D 체계에서 전략적 비중을 확대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수시장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멀티 브랜드 전략을 통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쉐보레 중심의 단일 구조에서 벗어나 캐딜락·GMC·뷰익이 더해지는 4-브랜드 체제로 확장함으로써 한국시장을 성장 가능한 소비시장으로 다시 정의하는 모습이다.
이 세 축이 동시에 강화되는 시장은 북미를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 GM이 한국GM을 단순 지역 거점이 아닌 글로벌 전략기지로 격상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지표다.
GM은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그동안 시장에서 제기돼 온 한국 철수설에 대한 대답을 내놨다. 나아가 한국을 미래 기술 개발, 글로벌 생산, 브랜드 확장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방 거점으로 재정의했다.
남은 과제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성공 이후 어떤 후속 모델로 글로벌 판매 흐름을 이어갈지, 멀티 브랜드 전략이 내수시장에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버추얼 센터가 실제 개발 혁신으로 이어질지가 한국GM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