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6일, 서울 성수동 레이어스튜디오41에서는 세계 최대 커피 브루잉 대회 '2025 월드 에어로프레스 챔피언십(World AeroPress Championship, 이하 WAC)' 본선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대상은 특정 국가도, 유명 선수도 아니었다. 모든 경기와 프로그램의 중심에 선 '에어로프레스(AeroPress)'였다.
◆성수 한복판에서 열린 세계 최대 브루잉 대회
WAC는 전 세계 70여 개국 예선을 통과한 국가대표들이 단 하나의 기구로 커피 한 잔을 추출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승부를 가르는 대회다. 국적이나 원두 정보는 모두 배제한 채 오직 '가장 맛있는 한 잔'을 기준으로 우승자를 정한다.
올해 대회는 12월5~6일 이틀간 성수 레이어스튜디오41에서 진행됐다. 5일에는 해외 로스터와 브루어가 만나는 전야제가 열렸고, 6일 본선에서는 국가대표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대회 기간 성수 일대는 커피 행사와 방문객이 뒤섞이며 평소보다도 높은 열기를 보였다. 국내외 로스터리가 참여한 '로스터스 빌리지', 서울 대표 베이커리 브랜드가 모인 '베이커스 레인', 디제잉 공연과 애프터파티까지 더해지며 성수 전체가 하나의 커피 페스티벌처럼 변했다.
6일 열린 결승전에서는 70개국 대표 브루어들이 마지막 한 잔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우승은 호주의 네모 팝(Némo Pop), 준우승과 3위는 각각 스위스의 얀 아렌드(Jan Ahrend), 인도의 다룬 바야스(Dharun Vyas)가 차지했다. 동일한 기구를 사용했지만 선수마다 다른 접근으로 완성된 한 잔이 우승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본선 무대를 장악한 '한 손에 잡히는 기계'
이 대회의 전제는 명확하다. 모든 참가자가 같은 도구, '에어로프레스' 하나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에어로프레스는 플라스틱 실린더(통)와 플런저(압력 막대)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지만 물 온도, 압력, 추출 시간 등 변수를 조절해 다양한 맛을 구현할 수 있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동일한 기기로도 선수마다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점이 WAC만의 특징이다.
현장에서도 에어로프레스의 장점은 확실히 드러났다. 전원이 없어도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추출할 수 있고, 조작이 간단해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금방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에게 체감됐다. "집에서도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지만 활용 폭이 넓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휴대성과 실용성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한국 커피 시장에서도 홈브루잉과 실험적 레시피 문화가 확산되며 장소나 장비 제약이 적은 도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어로프레스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주목받는 장비다. 국내 유통은 카페뮤제오(CAFFE MUSEO)가 담당하고 있으며, 입문자들이 첫 브루잉 도구로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동의 카페뮤제오 대표는 "에어로프레스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손동작이나 압력, 물을 붓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져 각자 다른 해석을 시도하기 좋은 도구"라며 "복잡한 장비 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WAC의 방식과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결국 성수를 움직인 건 '대회'가 아닌 '하나의 도구'
성수동은 평소에도 카페와 로스터리가 밀집한 지역이지만, 이번 챔피언십 기간 동안 그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복잡한 장비가 등장하지 않는 대회 특성상 에어로프레스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같은 기구를 사용해도 선수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모습은 대회 내내 반복됐다. 누군가는 천천히, 또 누군가는 짧고 강하게 플런저를 눌렀고, 물을 붓는 각도와 속도에서도 각자의 스타일이 드러났다. 단순한 구조의 기구가 선수의 개성과 취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 셈이다.
이는 WAC이 추구하는 대회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줬다. 대형 장비나 무거운 기술이 아닌 작은 도구 하나로 각자의 해석을 펼쳐 보이는 방식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고, 브루잉을 보다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에어로프레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대회 구조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도 브루잉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팀 윌리엄스(Tim Williams) WAC 디렉터는 "에어로프레스는 하나의 기구지만, 어떤 변수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한 잔이 만들어진다"며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과정이 WAC의 핵심이고, 매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조건 속에서도 각자의 해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이 이 대회를 계속 특별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