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잘났어정말이 아줌마를 추월합니다! 그 순간 아저씨가 가즈아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한바탕 웃음이 터질 법한 이 멘트는 실제 경주에서 울려 퍼졌던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입니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에서는 이런 유쾌한 중계가 자주 들려옵니다. 얼핏 들으면 농담처럼 느껴지지만, 이들 모두 실제 경주에 출전한 말들의 이름입니다. △잘났어정말 △아줌마 △아저씨 △가즈아 등은 한국마사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경주마들입니다.
경주마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팬들의 기억에 남는 '브랜딩 수단'이자, 중계 멘트와 관중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이름이 독특하고 재치 있을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 이름이나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마사회는 '마명(馬名) 등록 규정'을 통해 경주마 이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한글 마명은 띄어쓰기 없이 2~6글자, 영문은 최대 18자 이내로 제한되며, 이미 등록된 이름은 해당 말이 사망한 후 최소 5년이 지나야만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출생 후 한 달 내에 이름을 갖지만, 경주마는 생후 약 1년까지는 '○○○의 자마'로 불리며 이후에야 고유한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마명은 마주(馬主)가 정하되, 등록 규정을 통과해야만 공식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금지 항목도 존재합니다. △유명 인사나 정치인의 실명 및 별칭 △회사명·상품명 등 상업적 목적 △비속어나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은 모두 사용이 제한됩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President Trump'(트럼프 대통령)라는 마명이 정치적 논란 소지를 이유로 등록이 거부된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한글 마명은 최대 26자, 외국산 경주마의 경우 8자 이내로 제한되며, 한 글자 이름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2002~2003년 마주협회장배에서 연속 우승한 외국산 말 '부움(BOOM)'은 본래 이름이 'BOOM'이었지만, 한 글자 마명이 금지돼 '부움'으로 등록된 사례입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등록 절차로 인해 마주들은 작명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습니다. 이름은 곧 경주마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드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즈아 △렛잇고 △아줌마 △아저씨처럼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들이 출전표에 오르면, 경기 중 호명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사회적 유행이나 유명인을 패러디한 이름도 등장했습니다. '레이디고고', '서방신기'처럼 대중문화를 위트 있게 반영한 이름들은 관객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경주마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드는 효과를 냈습니다.
경주마 이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마주의 성향입니다. 자신의 철학이나 바람, 또는 유쾌한 상상력을 담아 독특한 이름을 짓고, 이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주마 '렛잇고'의 마주였던 류화영 씨는 201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열성 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경주마 이름을 지을 때, 이름을 따라 간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렛잇고도 영화 주인공처럼 작지만 스스로 잘 성장해 훌륭한 경주마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렛잇고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웃음을 주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경주마들. 앞으로 경마를 관람하실 때는 단순히 말이 어떻게 달리는지만 보지 마시고, 이름에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는 마주의 철학, 시대의 감성, 그리고 상상력이 함께 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이름이 관중의 웃음을 자아내며 결승선을 통과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