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약 10년간 이어진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뉴삼성'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고 있다. 대법원 무죄 확정으로 불확실성이 사라지자, 그는 미래 신사업 투자와 대규모 인수합병(M&A), 조직 혁신 등 그간 예고해 온 변화를 속도감 있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뉴삼성 철학의 뼈대
이 회장은 "위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죽느냐 사느냐의 각오",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강조하며 '삼성다움'을 복원해야 한다고 줄곧 밝혀왔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뉴삼성의 핵심 가치가 기술 중심 초격차 전략과 인재 우선주의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여기에 '위기일수록 과감한 투자'와 '속도가 곧 경쟁력'이라는 기조가 더해지며, 대규모 투자·신속한 의사결정·책임경영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대규모 투자·M&A, 조직 혁신으로 기존 삼성과 차별화
뉴삼성 전략은 과거의 성장 방식을 뛰어넘는 변화를 지향한다. 최근 2년간 로봇(레인보우로보틱스), AI(옥스퍼드 시멘틱테크놀로지스), 의료기기(소니오), 디지털헬스케어(젤스), 전장·오디오(마시모 오디오), 공조(플랙트) 등 다양한 분야 글로벌 기업을 적극 인수하며 신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동시에 AI·반도체·바이오 등 주요 미래 산업에 5년간 450조원을 투입하고, 삼성 전 사업 분야를 아우르는 AI 밸류체인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메모리, HBM,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 핵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개발과 글로벌 고객사 확대, 현지화 전략을 병행한다.
조직문화 측면에서는 직급별 체류 연한 폐지, 절대평가·동료평가제 도입, '프로' 호칭 일원화 등 수평적이고 젊은 조직을 지향하며, 이사회 권한 강화와 미래사업기획단 재정비로 변화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 지원 위해 워싱턴行
이재용 회장은 대법 무죄 확정 이후 첫 해외 일정으로 지난 29일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불과 사흘 앞둔 시점으로, 정부가 진행 중인 한미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한 행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와 첨단 AI 반도체 기술 협력 방안을 직접 제안해 협상 지원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10나노 이상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며, 오는 2030년까지 총 370억달러(약 54조원)를 투자해 현지 생산 거점을 확충하고 있다. 핵심 프로젝트는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텍사스 테일러 신규 파운드리로, 이번 테슬라 AI칩 생산의 주 무대다.
◆테슬라와의 22조원 계약, 뉴삼성의 시험대
무죄 확정 직후 성사된 테슬라와의 약 22조7648억원 규모 장기 계약은 뉴삼성 전략의 상징적 첫 성과다. 삼성은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2나노 공정 AI칩(AI6)을 양산해 테슬라 완전자율주행차와 로봇에 공급한다.
이번 계약은 미국 내 파운드리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최근 부진했던 파운드리 사업의 손익 구조 개선을 가능케 하는 계기이며, 글로벌 메이저 고객 확보로 NVIDIA·AMD·구글 등 잠재 발주처와의 추가 대형 수주 가능성을 높이는 '3중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TSMC가 과거 애플·엔비디아(NVIDIA) 수주를 발판 삼아 도약했던 전례와 유사한 변곡점으로 본다.
◆관건은 신뢰와 지속가능성…등기이사 공식 복귀는 미정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사법 판결이 남긴 사회적 파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뉴삼성이 장기적 신뢰를 얻으려면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 ESG 경영, 협력 생태계 확대 등 비재무적 가치 창출이 동시에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복귀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는 2019년 10월 등기이사 임기 만료 이후 미등기 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와 업계, 주요 언론에서 복귀 필요성과 시급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있어 향후 주주총회 상정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