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하늘이 높아만 간다. 목덜미 사이로 파고드는 선득한 봄바람. 바싹 마른 낙엽 사이로 새 순이 돋고 더 없이 맑은 공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른 봄여행의 백미는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관조(觀照)의 미학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행보를 가능하게 하는 곳. 허공에 떠있는 돌, 부석(浮石)의 전설을 간직한 영주 부석사에서 오랫동안 잊었던 자신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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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펼쳐진 모든 산하를 굽어보고 있으나 거만하지 않다. 하늘과 잇닿은 듯 높직이 자리 잡고 있으나 속세를 외면하지 않는다.
자연의 한 모서리를 헤집어 터를 마련했지만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는다. 마치 태고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은 순연(順延)의 자태.
영주 부석사는 그렇다.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무량수전 앞에 서서 광대하게 펼쳐진 소백의 준령을 보라. 첩첩이 이어진 산주름 사이로 이내가 피어오르고 하늘은 순간순간 다른 빛깔로 요동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위(無爲)와 제행(諸行)의 편린을 깨닫게 되는 듯한 풍경. 늙은 선승(禪僧)의 주장자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에 휩싸일 뿐이다. ‘내가 어떤 계단을 밟아 여기까지 올라 왔던가!’ 방금 지나온 108계단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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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의 조화
보통 가람과 비교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텅 비어있는 듯하면서도 어느 한 곳 비어있지 않은 충만. 삼층석탑을 일주문에서 직선으로 쭉 뻗어 올라가던 길은 천왕문을 지나 범종루 앞에 이르러 기묘한 뒤틀림을 보인다.
우리나라 조경의 특징인 비대칭적 구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획일적인 공간을 거부하면서 결국 꽉 짜여진 듯한 균제미를 역설적으로 내보인다.
건축가들은 부석사 범종루를 가리켜 ‘천재가 지은 구조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은 팔작지붕인데 뒤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라는 파격. 묘하게 뒤틀린 절묘한 각의 변화 등은 막연히 지형에 맞춰 배치한 것이 아니다. 의도적인 흐트러짐을 통해 무거움을 가볍게 하고 가벼움을 지그시 눌러 대가람 전체의 조화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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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비워 가득 채우는 대가람의 조화
더욱이 아침 해가 막 떠오를 무렵이면 이 불상들은 황금색 빛을 뿜어낸다. 텅빈 공간이 부처가 되고 그 부처는 다시 햇빛으로 개금불사(改金佛事)를 이룬다. 이와 같은 설계와 축조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부석사는 가람 전체를 통해 중생계에서 극락계까지 표현한 공간이라고 한다. 불가에서 이르는 구품의 우주가 일주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범종루 아래를 지나 안양문으로 들어서는 길은 바로 이승에서 피안으로 이르는 문턱이 된다. 아래에서는 안양문이지만 그 아래 계단을 통해 올라서면 안양루가 된다. 안양은 바로 극락의 다른 말이다.
이 문을 통해 올라서면 바로 극락세계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무량수전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무량수전. 임진왜란의 불경스러운 불길도 이곳을 침노하지 못했고 동족끼리 피를 뿌린 6·25의 참화도 여기는 비켜갔다.
◆ 배흘림기둥 스쳐 지나는 세월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 한 채에 감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량수전 앞에 서서 1시간을 보내며 찬찬히 뜯어보아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무량수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더 없이 평화롭고 아늑해 보인다. 부석사의 한 스님은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단 하루도 같을 때가 없다. 1년은 365일이니까 한 해에 365가지 풍경이 펼쳐지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건 1년만 생각한 것일 뿐이고 이 절이 세워진 뒤 지금까지 수억 차례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무량수전 앞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풍경은 결코 반복되지 않고 순간 순간 변화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곳이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 앞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가는 길
경북 영주로 가기 위해서는 청주-충주-제천을 경유해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으로 올라서야 한다. 제천에서 풍기나들 까지는 40여분 거리. 풍기나들목에서 부석사까지는 이정표가 잘 돼있다. 숙박은 풍기면 소재지에 있는 코리아나호텔(054-633-4445)를 이용하거나 부석사 매표소 안쪽에 있는 식당촌에서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은행잎이 물드는 10월은 부석사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 따라서 일정에 따라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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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길
부석사 아래 사하촌의 식당들마다 산채정식과 비빔밥 등을 내놓고 있으나 별다른 특징이 없는 맛이다. 이보다 부석사에서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 방향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수서원 주차장 앞 ‘소수서원휴게소식당’(054-633-9779)의 평범한 메뉴가 더 실속 있다. 기념품 매장의 한켠에 주방과 테이블을 마련해 그렇고 그런 맛일 거라는 선입견부터 드는 곳이지만 장맛이 뛰어난데다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주인의 손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매콤한 풋고추 향이 살아있는 청국장백반 4000원. 풍기인삼을 갈아 넣은 풍기인삼우유(2000원)도 입을 개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