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필수공익사업장에 적용되는 ‘직권중재 제도’가 결국 ‘철도파업’에 적용됐다. 로드맵에서조차 폐기하겠다고 했던 그 제도다. ‘직권중재’는 일부 대기업 노조의 파업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듯, 노동자들의 구속 및 해고를 유발한다. 때문에 노사갈등 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철도와 지하철 같은 공익사업장은 파업에 돌입하기 전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에 회부가 가능하다. 중재에 회부되면 15일동안 파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노동계가 직권중재를 받아들여 파업을 중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철도공사 노조도 1일 새벽 1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했다. 중노위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노조가 직권중재를 거부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노동계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볼 수 있는 ‘직권중재’를 악용,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기업 노조가 총파업을 뒷배경으로 임단협에 임할 경우 대부분 사용자들은 직권중재에 회부되기를 내심 바라는 게 사실이다.
철도노조의 경우 요구안에는 해고자 복직문제가 들어있다. 그러나 철도공사측은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노조와의 대화를 파행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사간의 대화가 이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측이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직권중재 뿐이다.
철도노조측은 이 때문에 “악법(직권중재)의 논리를 빌어 철도노조의 파업자체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지난 2003년 6월처럼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하겠다는 수순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직권중재…공권력 탄압 수순
노조측의 주장에 따르면 해고자복직문제는 이미 해결이 된 상태다. 지난 2003년 4월20일 해고자 40명, 2004년 12월 9명을 노사합의를 통해 복직시킨 바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사는 현재 300여개가 넘는 안건을 논의 중이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그 중 하나다.
하지만 해고자 복직 문제는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사측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논리적 일관성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는 노동계의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오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직권중재의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다. 직권중재가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파업권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툭하면 노동자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합법적인 파업을 해도 정부가 개입만하면 언제든지 ‘불법’이 된다. 정부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직권중재’와 같은 낡은 칼로 철동노동자의 투쟁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노정간의 정면 충돌이 예견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노사간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가운데 철도파업과 함께 민주노총의 총파업마저도 불법으로 몰아 공권력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입만 열면 ‘국제기준’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 국제기준에 따르면 총연합단체나 산별노조의 경우 정부를 상대로 주요한 정책적 요구를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가능하다.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경제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24시간 총파업은 정당하고 노조 단결체의 통상적인 활동범위에 속한다”고 명문헌법을 통해 밝히고 있다.
헌법 제33조에도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노동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단체행동을 할 경우 그 상대방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지 않고 있다.
◆ ILO조차 폐지 권고하는 직권중재
그런데도 정부는 노조가 파업만 하면 직권중재라는 낡은 칼을 앞세우고 있다. 정부는 왜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가로막는 것인가? 왜 노사관계를 대결구도로 몰고 있는가?
ILO는 지난 93년 이후 우리나라의 직권중재제도가 문제가 있다며 10차례 이상 폐지를 권고했다. “ILO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당정도 직권중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1월께, 국민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철폐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양대노총이 성명전을 통해 직권중재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노동계의 지지 속에서 탄생한 현 정부는 그러나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노동운동의 정도를 벗어난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정부의 노동계 무시정책을 반영하듯, 검찰과 경찰은 “노조위원장 검거할 것” “경찰력 투입으로 해산할 것”이라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철도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보수언론에서 왜곡보도한 듯 임금인상이 아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확대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보장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 복직 ▲KTX여승무원 정규직화 ▲인력충원 등이다.
공사측은 14차 본교섭에서도 “성실교섭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권중재가 떨어졌고, 노조는 불법을 감수하고라도 총파업에
돌입했다. 보수언론은 늘상 그래왔듯 누구의 잘잘못을 따기기보다 ‘시민불편’을 운운하며 사용자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막바지 진통 끝에 노사간의 이견을 좁히고 파업 철회 후 성실 교섭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철도공사측도 노조측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