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비정규직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전격 통과됐다. 지난 2004년 11월 발의된 뒤 15개월 만에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다.
2월 법안 통과는 사실상 예견됐었다. 환노위 이경재 위원장을 비롯한 열우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동당의 물리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법안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내달 2일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비정규직법안은 환노위 이경재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질서 유지권이 발동된 가운데 기습적으로 통과됐다.
민주노총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를 거론했던 한국노총이 던진 최종안보다 법안은 더욱 후퇴된 까닭에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노총이 여·야 간의 원만한 합의 처리를 위해 조직(노동계) 안팎의 부담을 무릅쓰고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이마저 정치권으로부터 묵살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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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노총 | ||
설상가상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노동계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원론만을 주장하다가 파행적으로 법안이 처리가 된 데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계도 노동계의 요구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어 노사관계 법제도선진화방안(로드맵), 노사정위원회 개편 등 풀어야 할 노동현안은 당분간 업치락 뒤치락 공방전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노위는 27일 밤 전체회의를 열어 기간제 및 파견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각각 2년으로 하고 기간제 고용기간 만료 후 ‘고용의제’(무기근로계약)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보호입법안을 처리, 법사위로 넘겼다.
환노위 이경재 위원장이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제 근로자 보호법 제정안),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법 개정안), 노동위원회법(노동위원회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을 차례로 통과시킨 시간은 오후 8시55분께로 알려지고 있다.
표결처리된 파견법을 제외한 나머지 2개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한국노총 최종안보다 개악된 파견법
법안 가운데 ‘기간제법’은 한국노총이 최종안으로 던진 사용기간 2년 후 ‘무기계약간주(정규직화)’조항이 환노위를 그대로 통과했다. 정부안은 3년 간 사용하고 해고를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기간제법은 그러나 노동계가 주장했던 사유 제한은 포함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사유제한’이란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할 때는 무분별하게 비정규노동자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라는 것으로 노동계는 ▲출산·육아,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의 대체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일시적·간헐적으로 업무가 증대한 경우 등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것을 요구해 왔다.
파견법의 경우도 상당히 개악됐다. 한국노총은 최종안에서 ▲사용기간 2년 ▲사용기간 이후 고용의제 적용 ▲불법파견 즉시 고용의무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 환노위를 통과한 안은 ▲사용기간 2년 ▲사용기간 이후 고용의무 ▲불법파견시 즉시가 아닌 2년 경과 뒤 고용의무를 적용키로 했다. 불법파견으로 적발되도 합법파견과 마찬가지로 2년동안 사용한 뒤 고용의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고용의제’란 직접적으로 고용하지 않았더라도 고용된 것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2년을 초과해 계속 사용한 경우 2년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고용의제조항에 근거해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견기간 2년을 초과한 시점부터는 사용사업주와 파견노동자간에 별도의 근로계약 체결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근로관계가 형성, 사용사업주는 근로기준법 제30조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파견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정부법안이 ‘개악’됐다고 비난받는 이유는 ‘사용기간 이후 고용의제 적용’이 ‘사용기간 이후 고용의무’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고용의무는 고용의제와 다르다. 고용의무는 사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용을 강제하는 힘을 법률에서 제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과태료 등이 부담돼 직접고용을 이행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 중 기간제법은 여당안대로 하되, 파견법은 한나라당의 의견을 일부 수용한 것이 핵심이다. 우리당 의원 일부는 한국노총 최종안과 마찬가지로 불법파견 적발 즉시 고용의무를 주장했으나 막판 조율 과정에서 ‘2년 경과 후 고용의무’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안은 이와 함께 ‘차별 처우’의 정의를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서 합리적 이유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또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비정규직 차별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차별 시정 청구 주체는 당사자로, 차별입증 책임주체는 사용자로 규정했으며 파견 허용 업종은 현행대로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되 구체적 내용은 추후 대통령 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비정규직법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2007년 1월부터, 100∼300인 사업장의 경우 2008년 1월부터, 100인 이하 사업장은 2009년 1월부터 각각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4인 이하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안은 이밖에 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도 법정 근로시간(주당 40시간) 이내라도 초과근로시간이 1주일에 1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단시간 근로를 남용할 수 없도록 했다.
◆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20분만에 법안통과
이날 전체회의는 오후 6께 국회 환노위에 경위들이 집결하면서 비정규직법안이 강행처리될 것으로 예견됐었다. 국회 본청 민원실 입구에서 경찰 병력이 증가 배치됐으며 외부인의 국회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오후 8시부터 국회 앞에서 강행저지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나 국회 안에서는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상태로 20분도 채 안걸려 법안은 처리됐다.
이 과정에 민주노동당 의원 및 여야의원, 국회 경위들간에 심한 몸싸움이 빚어졌으며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은 경위들에게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을 끌어낼 것을 지시해 단 의원은 경위들에게 일순간 구속당하기도 했다.
단병호 의원은 오후 9시15분께 기자들과 접촉한 자리에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며 “국회 안팎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