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공기와 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 두 가지는 많이 마시고 먹을수록 좋다.
즉, 코(鼻)로는 하늘의 공기를 마시고 입으로는 물을 먹되 좀더 넓은 의미로는 땅의 곡식(穀食)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며, 곡식은 다시 곡정(穀精)으로, 곡정은 혈정으로, 혈정은 혈액으로 될 것이니 즉 입으로는 혈액을 먹는 격이 된다.
이는 하늘의 기(氣)와 땅의 정(精)을 천기지정(天氣地精)이라 하여 우리가 정기(精氣)가 왕성하다라고 하는 것이며, 이를 다시 정혈(精血)과 원기(元氣)로 구분하여 혈기(血氣)가 왕성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천(天)과 기(氣)는 양(陽)이 되고, 지(地)와 정(精)은 음(陰)이 된다.
즉 천기(天氣)에 의해 원기(元氣)가 되고, 지정(地精=땅의 곡정)에 의하여 혈정(血精)이 되는 것으로 이 둘 중에 한 가지만 없거나 부족해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시를 해야 할 것은 입으로 먹는 혈(血)은 10일 이상을 먹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지만, 코로 마시는 기(氣)는 단 5분 이내로도 생명을 유지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연유로 한방에서는 기(氣)에다 우선을 두고 비중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혈비기불행(血非氣不行)이요 기비혈불화(氣非血不和)라고 하는 말은 피는 기가 아니면 혼자 행할 수 없고 기는 혈이 아니면 화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서로 불가분의 입장에서 하나만의 독립성은 있을 수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氣)가 없는 혈(血)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물질 일뿐이며 살아있는 혈액(血液)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 혈압(血壓)이니 혈액순환(血液循環)이니 하면서 오직 실체(實體)가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기(氣)라고 하는 것은 무시당하고 있다.
오히려 기압(氣壓)이니, 혈기순환(血氣循環) 이라 해야 타당하다고 사려된다.
우리가 빈혈(貧血)하면 적혈구나 백혈구에 있어 1cc 당 정상수치에서 일정수량의 함량에 미달 될 때 부여되는 병명이지만, 한방에서는 수치도 중요하지만 보다 혈 세포 하나하나의 질(質)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혈허(血虛)니 혈열(血熱)이니 하는 증을 주로 보며 혈허라 함은 혈 세포 하나하나의 무능과 무력을 뜻하며, 이는 기와 혈이 모두 허하여 원기 부족한 약한 체질을 뜻한다.
혈열이라 함은 피 속에 열로 인한 응고성(凝固性), 농도성(濃度性), 지연성(遲延性)등을 뜻하는데 이는 곧 경화증이나 뇌경색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열성체질(熱性體質)에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 등 순환기계통의 질병에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혈액순환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예로 다리(足) 쪽으로 흐르던 피를 위시하여 모든 흐름이 평소보다 덜 흐른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피가 안 통하면 부분적으로는 썩을 것이고 전체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는 것은, 다리에서 운동에 필요한 것을 계속 공급 할 수 없거나, 공급이 된다고 해도 어떤 문제로 말미암아 수용 불가하니 “그만 걷고 쉬어주시오” 하는 신체내의 부탁인 동시에 경고성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럴 때에는 휴식의 절대 필요성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생존경쟁의 시대에 마음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 무리가 축적되어 병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체 내에는 누구나 진아(眞我=참 나)라는 각자의 참 의사(醫師)가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부러진 다리는 나 스스로 만이 붙일 수 있는 것이며, 의원은 똑바로 붙게끔 갖다가 대어 줄뿐이며 또 한편으로는 빨리 붙게끔 약으로 도와 줄뿐이다.
즉 나의 모든 병은 기와 혈이 왕성하고 건전하면 무병이요, 둘 중 하나의 균형을 잃으면 불편(질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불편(질병)을 바로 잡아달라고 참 나(眞我)라는 의원이 내 몸에서 예고나 경고(고통)를 하는 것이며, 이때 고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여 빨리 치료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인데 그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 근본치료가 아니라 임기응변의 진통제의 남용이다.
한방에서는 천체를 대우주라 했고 우리 인체는 소우주라 했는데 우리 인체를 하나의 전체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옛말에 봉사가 코끼리의 배와 다리와 코를 만져 본 이야기가 각각 다르다는 격으로 이는 부분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은 너무나 진통제의 남용이 많으며 이 결과는 우리 몸의 근본 치료를 지연시키며 왜곡되게 유도하는 것이 아닌지는 다시 한번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