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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원 횡령에 집행유예…국민이 수긍하겠나"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에 참여연대 환영 한나라당 발끈

최봉석 기자 기자  2006.02.17 15: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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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판결에 대해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번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항소심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17일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9일 한남동 공관에서 승진한 판사들과 법원행정처 간부 20여명과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 두산 사건 관련 보도를 인용하며 “법관들의 판결에 간섭할 수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지만 이번 판결은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 대법원장은 또 “1억원 어치의 물건을 훔친 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판사는 없을 것”이라며 “그래 놓고 수백 억 원씩 횡령한 기업인들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말했다고 참여연대측은 밝혔다.

회삿돈 286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회장, 박용만 전 부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 일가들은 지난 8일 선고 공판에서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대법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일각에서는 ‘법관의 독립성 문제’를 제기하며 ‘잘못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상당수 사람들은 “법원 판결에 대해 느끼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에 대해서는 도외시한 것”이라면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쪽을 오히려 역비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17일 논평을 통해 “대법원장의 발언은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법원의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에 대한 봐주기 관행’을 지적한 것”이라며 “법원 내부에서조차도 더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번 일을 법원이 재벌총수나 정치인 등 우리 사회 권력층과 지도층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온정적으로 처벌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법 앞의 평등’이 온전히 실현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지금 필요한 것은 대법원장의 발언을 놓고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법원은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법원이 과연 ‘법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진지한 성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두산그룹 사태에서도 보이듯 재벌체제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의사결정구조, 투명성 같은 현대 주식회사의 운영 원리를 무자비하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사법부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의 하나”라며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적 원칙을 중대하게 훼손할 소지가 있어 매우 당혹스럽다”며 재벌과 기득권을 보호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논평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단지 법관끼리의 토론이나 대화가 아닌 양형에 관해서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은 사법부의 독립과 근간을 뒤흔드는 최초의 사건이어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