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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임금으로 딴일하나…체불 날로 확산

노동부 '29만명이 1조원이상 제때 못받아 고통' 집계

최봉석 기자 기자  2006.01.31 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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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해 12월 2일 오전 11시20분. 전주시 금암동 S주유소 앞 주상복합아파트 신축현장 3층에서 유모씨 등 인부 4명이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1시간 동안 투신 소동을 벌였다.

같은해 10월 중순부터 50여일 동안 노임을 한푼도 받지 못했는데, 한 사람당 300~400만원씩 밀린 임금 총 2000여 만원을 지급해달라는 게 이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였다. 그런데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경기도 여주CC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170일이 넘도록 임금을 받지 못해 여태껏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임금교섭이 난항을 거듭하고 이에 반발해 노조가 집회를 수시로 개최하자 같은해 8월 사측은 노조원 40여 명에 대해 대기발령을 시킨 직후부터 임금지급 거부를 고집하고 있다. 직원들은 현재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임금체불은 눈을 돌리면 병원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이 지난 설날을 앞두고 병원 노동자를 상대로 임금체불을 조사한 결과, 부산의 모 병원이 지난 2001년부터 상여금 390여억원을 지급하지 않는 등 총 9개 병원에서 446여억원의 임금이 체불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수개월이상 고의적 임금 지급기피 사례 빈번

근로자들의 ‘생계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을 갖고 사용자들이 몇 개월씩 혹은 몇 년씩 고의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도 임금을 제때에 받지 못해 ‘빈주머니’ 생활을 몇 달 째 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광주시의 모 중소기업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박모(33)씨는 이번 설 명절을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박씨 또한 몇 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안심하고 결혼을 했는데 느닷없이 회사 형편이 어렵다며 월급을 7개월 째 지급하지 않아 수입이 어려워지고, 결국 명절 때 고향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임금체불은 비단 국내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점이 크다. 외국인 노동자, 연소노동자(아르바이트생)들도 몸이 닳도록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급여를 제때에 받지 못하는 등 임금체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실, 이 같은 사례는 ‘새발의 피’에 가깝다.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구미지역 109개 기업 941명의 근로자가 28억52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재작년에 비해 193%나 증가한 액수다. 전남 광주지역의 경우, 체불임금 사업장과 피해 노동자가 각각 3509개 업체, 9301명이고 체불 발생액은 27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의 경우 임금 및 퇴직금 체불액은 지난해 102억8000여만원으로, 재작년에 비해 52%나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31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체불임금 실태는 10만건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따른 피해자는 약 29만여 명에 이른다. 체불임금 총액도 1조291억원에 가깝다.

◇ 정부 대책도 무용지물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설을 목전에 둔 지난 23일 △임금 체불 노동자에 대한 낮은 이자율의 생계비 대출 △임금체불 사업장 지도 강화 등과 같은 체불임금 청산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 대책은 매년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행정’일 뿐 실효성은 전혀없다는 지적이 높다.

노동부가 제시한 ‘연도별 체불임금 및 체당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체불임금 청산율은 지난 98년 58%, 2000년 60%, 2001년 88%, 2002년 82%, 2004년 69%, 2005년 74%에 이르는 등 악성 임금체불 사업장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회사가 지급해야 할 임금과 퇴직금을 정부가 대신 주고 나중에 사업주로부터 변제받는 ‘체당금’ 또한 98년 161억원에서 2004년에는 1591억원까지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1602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체불임금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정부가 명절 때만 되면 체불임금 청산 집중 지도기간을 설정해 체불임금 청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계속되는 임금체불을 견디지 못해 자진 퇴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 제도적 장치마련 시급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 그러나 이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체불임금과 관련한 쟁의행위가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부의 지급 명령도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을 자행한 사업주도 근로기준법 제112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임금이 계속 밀리면 근로자들은 가난해진다. 물론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주에 대한 최고장 발송을 통한 당사자간의 해결, 노동부에 체불임금 등에 관한 진정활동 등을 통해서도 체불임금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하지만 민사소송에 드는 비용 때문에 소송조차 할 수 없다. 이를 비웃듯 사업주들은 버젓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850만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황을 놓고 볼 때, 임금을 제때 받아도 화폐의 실질가치가 하락해 구매력이 저하되고 있는 마당에, 아예 체불임금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배가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어떤 경우가 임금체불?

1) 재직 중 임금(월급, 상여금, 기타 수당 등)의 경우, 임금지급일에서 1일이라도 지급이 지체되면 ‘임금체불’이라고 할 수 있다.
2) 근로자의 사망, 퇴직의 경우, 근로자의 사망 및 퇴직시에는 그 날로부터 14일 이내 ‘임금, 보상금 기타 일체의 금품’을 청산해야 하므로 14일이 지난 이후 임금이나 퇴직금의 일부 또는 전부가 지급되지 않는다면 체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