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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과 뇌물죄 변곡점上] 특이한 아이템·중고품을 받아라?

명분 갖춘 리스 면죄부 우려에 중고차 등 기존 변칙도 날개 달 가능성 커져

임혜현 기자 기자  2018.02.05 17: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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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의 판결이 5일 선고돼 세간의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더 나아가 삼성그룹의 명운을 건 세기의 재판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자연인이나 기업집단의 문제에서 조금 더 벗어나 보면 '새로울 게 없다'는 우려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탄식이 뒤섞여 나온다. 오래된 미래의 등장, 뇌물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변곡점'이 확실히 왔다는 점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오너 2세가 포괄적, 묵시적으로 청탁을 하고 뇌물을 준 게 맞느냐는 논리가 항소심에서 사실상 모두 배척됐다.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선고로 확연히 줄어들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5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간부 선고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순실은 이를 수령하는 것 넘어 자신의 의사 실행에 옮겼다고 보인다"며 "이들의 뇌물수수죄 공동정범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요체(기본틀)에도 불구하고 애초 논란이 된 280억 중 36억만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형량도 크게 줄었다.  

돈 말고 특이한 것·중고로…유행 굳히기?

여러 논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마필 논란'을 별도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별검사 측이 기소한 뇌물 공여 문제에 대부분 불인정했고, 마필 무상 사용 혐의만 뇌물로 인정했다.

승마를 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삼성의 지원을 받은 점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5일 나온 판결의 논리 구조에서는 마필은 어디까지나 '삼성 소유'이므로 뇌물 공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말을 정유라에 '무상 지원'한 건 그 부분, 즉 사용가치액만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고 방식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논리는 새롭고 참신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 나온 문제적 판결들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고, 다만 '이재용 사건'이라는 중대한 사회 이슈를 통해 이런 재확인이 널리 학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뇌물은 교부(주고받을) 당시, 혹은 약속할 당시에 가액이 명확히 특정돼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처벌을 할 때 특별법을 적용할지 일반법을 적용할지, 혹은 추징 처리를 어떻게 할지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판결 과정에서는 가액 산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의심없이 확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가액 문제가 바로 자동차, 말 등 교통수단에서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던 한 법조인이 건설업자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과 함께 그랜저를 받은 것이 알려져 결국 처벌된 사건이 있었다.

차 특히 고급차는 고가의 값어치는 물론 사회적 신분 과시 등 의미가 있어 상징적 뇌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처벌을 교훈으로 고급차를 선물받아 물의를 빚은 사안이 사라졌냐면 그렇지 않다는 소리가 나온다.

2011년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차를 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이 검찰 명예에 먹칠을 했다.  대법원은 "(벤츠는) 사건 청탁 대가가 아니라 사랑의 정표(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추가로 논의)"라며 해당 여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의 경우, 2008~2009년 넥슨홀딩스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이 차량의 인수비용 3000만원까지 넥슨으로부터 챙긴 혐의 등으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연말, 직무 대가성 성립에 의심이 있다며 재판을 다시 하도록 아예 '파기환송'해 버렸다.

또다른 사건도 처리 결과가 흥미롭다. 2015년 금융기관 직원이 업무상 편의 제공(즉 부정한 대출 산정) 대가로 고급 외제차를 받은 사안을 검찰이 수사한 경우가 있었는데, 여기서 등장한 차는 신품이 아닌 중고차(렉서스)였다. 이 문제의 가액 산정에 피고인 측은 감정평가액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반박 근거를 제출하기도 했다.

차를 받아도 대가성 문제 등 여러 안전판이 있고, 리스(빌린 차) 혹은 중고차를 받으면 액수 특정 논란에 불을 지피는 셈이라 공격 선수(검찰)와 방어팀(피고와 변호인)이 지루한 공방전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퍼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말 문제는 이런 논의에 확인사살 격으로 회자될 여지가 크다.

말, 그것도 아주 특이하고 좋은 말인데 '사용료'만?

물론 뇌물의 액수를 최종적으로는 특정하도록 노력한다는 숙제, 즉 수사와 재판의 엄정성 요청 자체는 타도 대상이 아니다. 다만 중고차 등 액수 특정의 어려움을 그물의 찢어진 구석삼아 빠져나가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가 높다.

소장 법학연구자 등 관련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액수 특정의 엄격성은 '백보 양보해서' 인정하더라도, 삼성 마필 액수 판단에서 보듯 특이한 케이스에 면죄부를 주도록 악용, 변질되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는다.

이는 위에서 보듯 리스 같은 빌린 물건 즉 소유권이 남에게 유보돼 있는 물품의 경우 실질적인 사회적 인식과 법률 판단이 너무 괴리된다는 점에 뿌리를 둔 문제 제기다.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든, 자기 차이든 회사 것이든 혹은 다른 회사에서 빌려서 주든 간에 키를 넘기고 높고 힘있는 사람이 타면 소유권을 엄격한 의미에서의 법률적 소유권자나 공급자가 주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포기한 물건으로 보든, 혹은 그 돈을 물건을 선물한 이가 사실상 계속 물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특정 차량이라는 물건을 사서 주는 것과 달리 볼 이유가 없지 않냐는 것이다.

차는 그렇다 쳐도, 말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수레를 끄는 말과 고급 경주용 말을 비교해 볼 때, 어차피 같은 말이고 가격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동일한 판단 선상에서 놓고 처리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삼성이 이번에 마필 공급을 한 것은 스스로 말을 사서 쓰든 남에게 잠시 빌려주든 자율성을 갖고 처리하기 어렵고 질책을 받아 부득이하게 이뤄진 뇌물 공여임은 분명하다. 이 대목까지는 법조계에서도 이견이 없고 이번 판결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특정인과 특정한 말의 마리아쥬(궁합, 팀웍)는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싼 걸 임의로 가져다 안길 여지도 아니다. 삼성이 사고 소유권도 계속 삼성에게 있다 한들, 정유라씨 특정인을 위해 샀고, 그녀가 아니고서는 필요성이 떨어지는 점에서 개별적 선물이자 개인을 위한 지출로 전체를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반론은 그래서 나온다.

애초 이런 지적을 웃어넘기려면 말 지원을 제대로 해 주라는 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적 및 질타를 했다는 논리 자체부터 법원에서 전부 깨져 아예 채택되어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 사건을 바라보는 이들 중에 상당수는 이런 논리에 따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삼성 측도 정씨의 모친(최순실씨)이 삼성 몰래 독일의 말 중개상과 교환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는 논리를 편 바 있는 등 '전성기의 가장 좋은 말을 교체해 가며 공급하는 문제'에 부담감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이번 마필 판결이 그대로 사용료만 인정 논리로 법률심인 3심(대법원)에서까지 받아들여지면 앞으로 뇌물 문제가 리스 등 각종 새로운 논리 개발과 고가의 특이한 물품 지원으로 번질 여지가 있다. 이는 삼성이 위협을 당해 부득이하게 뇌물을 줬는가의 문제와는 별개의 이슈이고, 이번 사건이 삼성 운명과 별개로 조명될 필요성을 부여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