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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치는 서민경기와 엇갈린 민생 점검

[기자수첩] 스산한 시장 훑고 “체감경기 차차 나아질 것” 되풀이

이인우 기자 기자  2006.01.19 16: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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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요즘 매상이 지난해 설에 비해 좀 나아졌나요?”
“자식들은 7남매에요. 큰 아이는 지금….”

19일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바람처럼 지나간 뒤 혼자 점포를 지키고 있는 신림1동시장 ‘충남상회’ 주인 김정자 씨(63․여)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귀가 어두운데다 갑자기 들이닥쳤다 사라진 높은 분의 행차에 당황한 서민의 동문서답이었다.

김 씨의 이같은 황망한 대답은 이날 한 부총리의 전격적인 재래시장 방문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낮 12시 이전의 시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점포가 숱한데다 장을 보는 시민들의 발길이 전혀 없어 스산하기조차 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19일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설 물가안정에 힘써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장건상 경제정책심의관은 한 부총리의 신림시장 방문 목적에 대해 “제수용품 등 설 수급물품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직선거리 320여m에 이르는 시장을 돌며 여러 상인들과 의례적인 몇 마디를 나누는데 그친 이번 방문을 통해 체감경기를 확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 부총리가 김희철 관악부청장을 비롯, 시장번영회 간부들과 함께 오찬을 위해 자리를 옮긴 뒤 상인들은 저마다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 상인은 “시장 사람들은 뒷전이고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과 기자들의 쇼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도대체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는 재래시장 형편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어물전 상인은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물건을 들여놓지 못해 진열대를 비워놓았더니 사진기자들이 구둣발로 짓밟고 올라섰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해마다 급락하는 시장 매출과 대형할인점과의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에 비해 한 부총리의 대책은 막연하기만 했다.

한 부총리는 재래시장 지원대책과 관련, 시장 시설 등 하드웨어 구축은 웬만큼 끝났고 이제 상인들 주체의 소프트웨어를 마련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에 비해 신림1동시장 번영회는 모처럼의 높은 분 방문에 대비, 여러 건의사항을 마련하는 등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시장번영회측은 대구 서문시장 화재를 예로 들며 신림시장의 1년 화재보험료 1700만원의 국고보조와 화장실, 종합물류창고, 유아놀이방 등을 포함하는 고객지원센터 건립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설 맞이 대바겐세일을 실시, 19일부터 26일까지 8일간 모든 점포에서 10~50%까지 할인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라며 정부의 설 물가 안정화에 화답했다.

이같은 상인들의 자구노력과 정부에 대한 지원요청이 얼마나 정책에 반영될 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단지 이날 행사를 통해 정부와 서민경제의 아득한 거리만 또렷하게 드러났을 뿐이었다.

많은 상인들이 한 부총리의 방문을 공식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속으로는 충남상회 김정자 할머니와 같은 동문서답의 자괴감만 한 아름 얻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