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달 30일 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보험사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오히려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보험사들이 소멸시효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첫 판례지만, 보험사들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금융당국과 소비자 단체에 이어 정치권까지 의무에서 벗어난 보험사 압박에 나선 것.
엎친 데 덮친 격, 교보생명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7개 보험사 가운데 동부생명이 판결과 상관없이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나머지 6개사는 더욱 고심에 빠졌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문구 하나로 악몽 시작…보험사 당국 압박에도 "대법 판결 기다려"
현재 보험사들의 숨을 조인 자살보험금은 2010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가 되는 부문은 지난 2010년 4월 이전 '재해사망특약'이다.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이 일본 생명보험약관을 번역할 당시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을 작성했고 여러 생보사들이 이를 그대로 옮겨 상품을 출시했다. 이후 보험사들은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며 2010년이 돼서야 이 문구를 없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월26일 기준 자살 관련 미지급 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건은 2314건(78%), 2003억원(81%)에 달했었다. 다만 5월 금융감독원 브리핑 이후 ING생명을 시작으로 △신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PCA생명 △DGB생명 △흥국생명 △하나생명이 지급을 결정하며 그 액수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반면 △삼성생명 △교보생명 △동부생명 △알리안츠생명 △한화생명 △KDB생명 △현대라이프는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한 보험사 관계자는 "큰 이슈인 만큼 대법원이 빠른 시일 내 판결을 내릴 것으로 판단해 금감원에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법의 판단이 남은 상황에서 금감원 입장대로 보험금을 지급하기엔 배임 등이 걸림돌"이라고 말했었다.
◆대법 "소멸시효 지난 보험금 지급 의무 없다" 웃지 못하는 보험사
보험사 생각과는 달리, 대법의 최종 판결은 4개월 뒤인 지난달 30일 이뤄졌다. 대법원 민사3부는 교보생명이 고객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04년 재해사망특약이 포함된 종신보험에 가입한 B씨가 2006년 자살하자 교보생명은 보험 계약 수익자인 A씨에게 일반사망보험금 5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뒤 재해사망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청구 요청했으나 교보생명은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줄 수 없다며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1·2·3심 모두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대법 판결에도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지난 5월 보험사를 압박한 데 이어, 7월 기자간담회에서 "대법 판단과 별개로 보험업법 위반에 대한 행정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냈던 목소리를 유지한 것.
여기에 정치권 압박도 더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서울 도봉구을)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해 소멸시효 특례를 적용하는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단체 역시 이 같은 의견에 가세했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은 대법 판결은 보험사의 잘못을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논평한 것이다.
◆동부생명, 자살보험금 지급 결정…타 보험사로 쏠리는 시선
더욱이 동부생명이 미지급 보험사 중 처음 판결 이후 소멸시효 지난 보험금을 포함한 총 140억원 지급을 결정하면서 나머지 보험사 결정에 눈길이 쏠렸다. 현재 미지급 보험사들이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부생명은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사흘 전인 27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동부생명 관계자는 "그전부터 계속 관련 논의가 있었다"며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 아녔기에 판결 전에 지급 확정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보험사 관계자는 "동부생명이 지급을 결정했지만 우리 회사는 달라질 것이 없다"며 "각사별로 상황에 맞게 진행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을 아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향후 교보생명 판결문을 살펴본 뒤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이외에도 정치권이나 당국, 업계 반응 등도 당연히 살필 수밖에 없다"고 응대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에서 금감원 현장검사 결과 지급되지 않은 자살보험금이 발견돼 미지급금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며 "힘들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형국에 동부생명 결정으로 다른 보험사들에게 시선이 집중됐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