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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에어컨 4시간 넘게 틀면 '비합리적'이라며?

한 여름 '땀띠범벅' 아기 시원하게 해준 죄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8.11 15: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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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호소네 집에는 '땀쟁이'가 셋이다. 남편은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면 따로 세면용 수건을 목에 걸고 식사를 하고 네 살 호진이는 하루 종일 뛰고 또 뛰며 넓지도 않은 집을 탈주한 햄스터마냥 휘젓고 다니니 땀 마를 새가 없다.

다크호스는 작년에 태어난 막내 소정이다. 조리원 동기들 사이에서 독보적 우량아였던 녀석은 아침 목욕을 하고 두어 시간만 지나면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긴다.

땀이야 수시로 씻기고 통풍 잘 되는 옷을 입히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열 많은 체질로 타고난 남매의 피부였다. 조금만 더워도 목과 사타구니를 타고 좁쌀 같은 땀띠가 창궐하니 요즘에는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있다.

호소남매는 흔히 '태열'이라 부르는 신생아 지루성 피부염을 호되게 앓았다. 증상은 간단하다. 뽀얀 아기피부는 간데없이 얼굴과 두피, 피부가 겹치는 부분 등에 노란 진물 엉긴 여드름이 뒤덮여 엄마들의 피를 말린다.

보통 생후 100일쯤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데 종종 아토피 피부염으로 진행될 수 있으니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전언이다. 관리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지만 제일 중요한 키워드가 두 개인데 바로 '보습'과 '냉방'이다.

아기 보습제야 워낙 좋은 제품도 많고 선택의 폭이 넓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실내온도 맞추기는 좀 까다롭다. 아이 키우는 집의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는 22~25도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체온이 높고 신체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위에 약하다. 특히 태열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더울수록 가렵기 때문에 손톱으로 긁어대다 피를 보거나 2차 감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3년 전 여드름쟁이 첫째를 진찰했던 소아과 선생님은 실내온도 24도를 권장하셨고 이른 더위가 닥쳤던 그해 6월부터 아기방에 설치한 6평형 벽걸이 에어컨은 완전한 가을이 될 때까지 발전기마냥 돌아갔다.

당시 신축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전력계량기를 검침하시던 분이 놀라서 초인종을 누르셨다. 이달 들어 계량기가 팽팽 돌아가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모유수유를 하던 때라 부스스한 초보엄마를 본 검침원 아주머니는 빠르게 상황을 납득하셨다.

"어쩐지. 아기 낳으셨구나. 여름에 아기 있는 집은 원래 그래요. 시원하게 키워야 건강하지."

그해 여름 전기요금으로 매달 20만원 정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벽걸이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말고는 딱히 추가된 가전이 없었지만 평소보다 5배 정도 부담이 불어난 셈이었다.

최근 전기요금 누진제를 두고 여론이 심상찮다. 연일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전국 대부분을 관통하면서 서울의 경우 지난달 22일 이후 어제까지 열대야가 아닌 날은 불과 이틀뿐이다. 그렇다고 에어컨에 매달렸다가 요금폭탄을 떠안기 십상인데 그 '폭탄'이 애먼 사람을 잡고 있다.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은 정부를 대변해 이렇게 말했다.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 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과장됐다. 벽걸이형 에어컨은 하루 8시간, 거실 스탠드형은 하루 4시간 사용할 경우 월 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중략)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그는 '합리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었다. 사전적 의미로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을 합리적이라고 한다.

오빠보다 더 심한 태열에 시달린 둘째는 작년 여름 내내 고생을 했다. 뺨은 사포처럼 거칠어졌고 두피는 지루성 피부염 특유의 누런 진물이 말라붙었다. 종잇장처럼 날카로운 손톱에 긁혀 상처투성인데도 가려움에 긁는 것을 멈추지 않아 온종일 손싸개를 했다.

시원하게 해주는 게 최선이라 어쩔 수 없이 벽걸이 에어컨에 매달렸고 정부가 주장하는 '합리적인' 이용시간보다는 길었다. 역시 평소의 4~5배 정도인 20만원 넘는 돈이 전기요금으로 나갔고 사실상 홑벌이나 다름없던 때라 여름 내내 가계부는 적자였다.

이 상황을 정부 설명대로 평가하자면 '비합리적'으로 에어컨을 켜댔으므로 누진제에 따라 전기세를 더 많이 낸 것뿐이다. 아이가 땀띠로 온몸이 벌게지든, 가려워서 피가 나도록 긁어대든 절약이 미덕이니 감수해야 한다는 게 그들 생각인 셈이다.

사실 아낀다고 아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정부와 한국전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언론이 앞다퉈 누진제의 허점을 증명하는 '팩트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올해 이슈는 아마 내년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와서 정부가 수고스럽게 누진제에 손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가정의 합리적인 소비"를 권장하는 정부 뒤에는 부적절한 법인카드 사용내역과 과도한 성과급·해외연수 사실이 드러나도 맷집 좋게 버티는 공기업이 있다. 또한 이들을 받쳐주는 든든한 주체도 건재한다.

공기업은 정부 입김이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이익을 추구하며 공기업 한국전력의 최대고객은 우리가 아니라 산업용 전기 가입자, 즉 기업이다.

지난해 국내 전력 사용량의 56.5%를 차지한 그들은 현행 전기요금 제도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