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어린이집커녕 문화센터도 가본 적이 없는 둘째가 보름 사이 두 번이나 수족구에 걸렸다. 공교롭게도 어린이집은 방학 중이며 외할머니는 휴가 중, 남편은 업무 중이었다. 죄 많은 호소엄마의 여름휴가는 수족구 보균자 남매와 폭염 속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지난달 초 이른 새벽에 뒤척거리는 둘째를 토닥이는데 이상하게 뜨끈했다. 혹시나 체온을 재보니 역시나 39.2도. 급히 해열제를 먹이고 일찍 소아과로 내달리니 미쳐 못 본 붉은 반점이 막 돋기 시작한 상태였다.
수족구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하루 만에 열이 내렸고 입맛이 약간 떨어진 것 빼고는 컨디션도 좋았다. 나흘짜리 처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며 단단히 각오를 다져야 했다. 수족구는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이상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째를 끝까지 '깨끗한 상태로' 지켜내는 게 진짜 복병이기 때문이다.
전염성이 강한 탓에 일단 발병하면 일주일정도 어린이집을 쉬어야 한다. 재택근무 워킹맘에게 어린이집은 유일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신' 같은 존재다. 7월 마지막 주로 잡힌 자율등원(이라 부르는 사실상 방학) 기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장난감, 식기, 수건, 목욕통 등등 둘째가 만졌음직한 것들은 모조리 소독, 분리한 것을 시작으로 한 주 동안 호소엄마는 마치 독한 사감선생님처럼 남매를 감시하고 수시로 씻겼다. 혈육끼리 좀 어색한 사이가 됐지만 어린이집 등원 금지를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말이다.
마침내 둘째의 격리기간이 끝나고 첫째는 아무 증상도 없이 무사했다. 100% 예방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통념을 이 몸이 깼다는 자신감과 함께 두려울 게 없었다.
보름 뒤 어린이집 방학과 동시에 호소엄마도 '직장인의 꽃'이라는 여름휴가를 맞았다. 공사다망한 호소아빠와는 휴가일정 맞추기에 일찌감치 실패해 근처 찜질방 물놀이장과 베란다 피서로 만족해야겠지만 마감 걱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딘가. 호기롭게 친정엄마께도 일주일 휴가를 드렸고 이틀 정도는 나름 평화로웠다.
그러니까 지난주 수요일(27일) 아침 둘째 입가에 빨간 물집이 다닥다닥 올라온 것을 보기 전까지는.
전날 먹은 천도복숭아가 문제일 수도 있었지만 '쎄하다'는 방언이 이토록 적절한 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촉이 꿈틀했다. 일단 열은 없고 수포 말고는 평소 모습 그대로인지라 일단 지켜보기로 했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오후 들어 둘째의 손과 발, 사타구니까지 번진 반점은 누가 봐도 수족구였다. 이튿날 첫째를 구슬려 온 가족이 소아과로 다시 출동했고 의사선생님은 (또) 수족구라는 진단과 함께 "이번에도 힘내시라"며 손톱만큼도 위안이 안 되는 위로를 보내셨다.
(마음의 소리)"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다시 예민한 사감선생 모드로 돌아가 2주 전에 했던 유난스러운 작업들을 반복할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혔다. 어린이집 방학은 8월 2일까지니 전염력이 약해지는 이틀 정도만 사수하면 승산은 있어보였지만 이튿날 부질없는 기대였음이 바로 증명됐다. 그러게. 포기하면 편하다니까.

목욕하고 나온 큰 아이 허벅지에 좁쌀처럼 빼곡한 반점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수족구 동기가 된 남매는 싸잡아 이번 주말까지 격리 권고를 받았다. 물놀이장은커녕 마트도 못 가게 된 탓에 첫째는 문어마냥 입이 나왔으며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둘째는 지금 삐진 오빠와 육탄전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집에 등원 불가 통보를 한지 오늘로 이틀째. 직장인으로서 주어진 휴가는 남매 돌보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면 엄마로서의 일상은 마치 끝도 없이 긴 트랙 위에 그만큼 늘어선 허들을 뛰어넘는 것 같다. 중간에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아주 긴 코스로 말이다.